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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남아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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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성원
댓글 0건 조회 5,268회 작성일 19-04-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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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남아 있는 사람


임경선 지음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 선물은 화장품, 동생들 선물은 과자였고, 아버지를 위해서는 그리 비싸지 않은 양주를 한 병 사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으로부터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그 양주 병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아버지가 양주를 드시려고 꺼낼 때마다 마치 보물인 마냥 품에 꼭 안고 나오신다고 말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이 실제가 되었을 때의 기분은 좋지만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년 남성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분이신 것 같다. 다른 친구들 아버지는 과묵하고 무섭다고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너무 감수성이 풍부하신 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내가 군 입대하던 날에 아버지의 모습이다. 내가 진짜 가족의 품을 떠나는 순간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셨다. 물론 그 날 나도 굉장히 우울하긴 했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가족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훈련소에 있어 연락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기에는 아버지가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보이셨다고 한다. 요즘도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어느 누구보다 밝은 표정을 보이시다가도 내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갈 시간이 되면 또 언제 오냐고 너 내려가면 한 동안 집이 또 허전할 거 같다고 서운해 하신다. 주변을 보면 보통 이런 이야기는 어머니가 하신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뭔가 반대가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아버지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한테 그렇게 살갑게 대한 적도 없을뿐더러 나는 원래 내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사실 이 질문이 처음 머리 속으로 들어온 것은 꽤나 단순한 이유였다. 주말에 집에 올라가 우연히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사진을 본 후 분명 아버지도 나를 보면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나를 닮은 자식을 본다는 것은 무슨 기분인지 궁금했다. 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이제 갓 20살이 된 자제를 두신 분과 대화를 할 자리가 있었다.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녀가 자기 자신을 닮은 것을 볼 때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안좋은 습관까지 닮은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고 하셨다. 사실 그 기분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내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나를 보아온 시간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 한가지는 배울 수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도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처음 걸음마를 걸었던 시간, 그리고 지금 현재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 소설 모음이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연애를 시작하고 끝을 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기도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아버지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참 쓸 데 없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항상 보고 싶어 하시고 곁을 떠나는 것을 그토록 서운해하시는 아버지를 때로는 귀찮다고만 느낀 내 자신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항상 소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한가지 있다. 나중에 나나 동생들이 분가해서 나가더라도 언젠가는 같은 곳에서 모여 살자는 것이 그것이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런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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