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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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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139회 작성일 19-04-0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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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트 에코


최근 ‘가짜 뉴스’라는 키워드가 인터넷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거짓 정보로 적을 속이고 교란시켜왔던 예들은 고대시대부터 존재했을 법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 SNS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개인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진짜처럼 퍼뜨리는 사례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작년 말 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짜 뉴스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가짜 뉴스 처벌법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가짜 뉴스’ 만이 문제일까? 성향이 뚜렷하고 특정한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거대 언론들은 목적에 맞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재구성하여 그것들은 대중에게 내보낸다. 대중들은 (특히 조금이라도 같은 생각이나 성향을 가진) 그것들을 진실이라고 믿고 뒤에 의도적으로 숨겨진 정보들이나 반대편 입장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생애 마지막 작품 제목인 ‘제0호’에서 언론들의 이러한 작태를 고발한다. 소설 내에 등장하는 신문사인 ’도마니‘의 자금을 대주는 발행인은 실제 신문을 발행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가 신문사를 운영하는 목적은 ’신문을 발행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이용해 정재계의 인물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문은 실제로는 발행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신문사의 사장 주필 시메이는 이 사실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는 대필 작가로서 여러 직장을 전전하던 중년의 글쟁이인 콜론나를 채용한다.

 

도마니에는 여섯 명의 기자가 추가로 들어오게 되고, 실제로는 발행되지 않을 신문의 예비판인 ‘제0호’를 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주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기사 보다는 정보를 교묘하게 이용해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특종 기사들을 쓰도록 기자들을 유도하고, 발행인에게 불리한 내용은 신문에 넣지 않고 발행인의 적이 될 만한 인물에게 독이 될 만한 기사를 작성하는 등 발행인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구성해 나간다.

 

1992년 이탈리아의 한 엉터리 신문사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2019년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내용과는 거리가 먼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들은 인터넷을 키고 눈을 돌리기만 하면 손쉽게 찾을 수 있으며, 특정 인물을 지지하거나 감싸기 위해 다른 기사들로 소위 ‘물타기’ 하는 행태들도 발견할 수 있다. ‘도마니’의 회의에서 주필이 말했던 “오늘날에는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하거나 기소를 받게 되었을 대 그것을 응수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 고발인이나 기소인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만한 것을 찾아내면 됩니다.” 라는 문장처럼, 한 세력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 때 그 사건과 관계없는 상대방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흐리면서 여론의 향방을 돌려버리는 예시들은 우리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소설의 중후반의 초점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진 무솔리니가 교황, 정치가, 테러리스트 등과 엮여 있다는 혼자만의 가설에 심취하여 혼자서 조사를 시작한 기자 브라가도초에게 옮겨간다. 브라가도초는 콜론나와 주필에게 그가 조사하고 있는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제0호에 관련된 기사를 실으려 한다. 그는 매춘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조사 역시 담당하고 있었는데, 콜론나와 주필에게 무솔리니에 관한 사실을 말하고 몇 일 뒤, 그는 매춘 촌 앞에서 등에 칼을 맞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콜론나는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여자친구의 집에서 몇 달 간 숨어 지낸다. 여자친구는 브라가도초가 죽은 것이 그 시절 심심찮게 있었던 매춘 촌에서의 인터뷰 중 포주에게 칼을 맞고 죽은 사건이 일어난 것뿐이라며 밖에 나가도 좋다고 콜론나를 설득하지만, 콜론나는 무솔리니의 정보를 알고 있어 자신도 밖에 나가면 살해될 것이라고 확신하여 집안에만 머무른다.

 

소설은 콜론나와 여자친구가 함께 보는 텔레비전의 BBC 채널에서, 브라가도초가 이야기했던 음모론 속 내용들이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소개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주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에서는 정말 살해범들이 콜론나를 쫓아다닌 것인지 아니면 브라가도초가 단지 포주에게 죽은 것인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BBC 채널에 방영될 정도의 정보들이라면, 주인공이 조금 더 알아보았다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을 것이다. 즉, 콜론나는 단지 그럴듯한 음모론과 우연한 타이밍의 동료 기자의 죽음을 자신의 머리속에서 실제적인 살해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콜론나의 모습은 마치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는 온갖 기사들을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버무려 만들어지는 음모론과 가공된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을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보들은 또한 실상을 부풀리고 자극적이어서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매우 쉽다.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여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명목으로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수 많은 촛불을 든 사람들 중 지금 미국산 소고기를 광우병이 무서워 먹지 않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권력자들이나 언론들은 단지 필요할 때에 자신들의 지지층과 권력을 확고히 하고 반대편을 누르기 위해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인 이념을 교묘히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우파의 긍정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스스로를 우파라고 칭하는 집단은 흑백논리와 선전을 이용해 반대세력을 누르려고 하고 좌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반대편 세력에 있는 사람을 공격할 때에는 사돈의 팔촌까지의 온갖 흠을 찾아내어 공격하다가 막상 자신들이 검증 받을 때가 되어서는 사생활은 보장해 주어야 된다는 이중잣대를 들이밀어 버린다. 문제는 가장 공정하고 사실을 말해야 하는 언론들이 이들의 도구가 되어 여론을 호도하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은 권력과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마치 또다른 하나의 권력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다.

 

나의 바람으로는 여러 사실들에 대해서 단지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보고 싶다. 사실에 대한 의견들을 기사로 낼 수는 있지만, 한 쪽 성향에 유리하게 특정 정보를 배제하거나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정보들을 모두 보여주고 독자들도 그것들을 비교해가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사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의 구조에서 그런 것들이 도저히 어려운 일이라면, 결국에는 어디서든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독자들이 중립성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단지 자신의 성향과 맞다는 이유로 반대편 성향의 사람들을 무시해 버리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진실된 정보를 바탕으로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라는 건 너무 이상적인 바람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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