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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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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343회 작성일 19-03-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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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었을까. 학교에서 집으로 혼자서 천천히 걸어오던 날이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나는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상태는 어떤 상태 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결국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법한 진부한 생각을 나는 그 때 처음으로 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생각이 영영 없어지는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그게 죽음이라는 순간이 아닐까. 이렇게 시작된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매번 막연한 답답함과 두려움으로 변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공허의 상태, 까만 색 배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형상이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였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상태로 깊이 빠져들다 보면 결국은 보통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답답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억지로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곤 했다.



성인이 되어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등의 성취에 관한 막연한 슬로건에서 원치 않게 빠져나온 후에 죽음은 나에게 다소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어렸을 적 그렇게 무서워했던 롤러코스터는 ‘사고 나면 죽으면 되지’ 라는 무책임한 생각 속에서 동네 놀이터에 있는 그네와 비슷한 수준의 찰나의 두려움을 주는 놀이기구가 되었고, 교회에서 누군가가 던진 너는 위험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할 수 있니? 라는 질문에 별 생각없이 ‘당연하죠’ 라는 말을 내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때의 심정은 종교의 포교를 위한 사명감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몇 년 혹은 몇 십년 더 사는 것에 대한 허무감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렇듯 조금씩 머리가 커가면서 나에게 죽음은, 친숙하지만 무서운 것이 되었고, 삶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다고 알려진 솔로몬의 성경에서의 독백인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와 같이 죽음 앞에서 헛된 것이 아닐까 하는 끊임없는 물음을 되 뇌이곤 했었다.


 

정말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죽음 앞에서 정말 헛된 것일 뿐일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이제 막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서른여섯 살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인 ‘폴’이 암 판정을 받은 후에, 죽어 나가기 시작한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선이 담긴 그의 이야기이다. 종합병원의 레지던트로써, 그는 수많은 죽음을 바로 눈 앞에서 경험한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한 장면은 의대생들이 사전에 시체를 기증하기로 약속했던 사람들의 시체를 해부하고 실습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농담 따먹기를 하고 점심을 뭘 먹을지를 생각한다. 죽기 전에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노라 생각했던 그들의 죽음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던 그들의 모습들이 결국에는 숨이 사라진 채 시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남아,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신입 의대생들의 실습도구로 활용되는 장면은, 인생에 대한 찰나의 회의감을 느끼기에 매우 충분한 장면이었다.



주인공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장 수술이 까다롭다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그는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그런 출중한 능력으로 인해 여러 병원과 학교의 의과대학 교수직의 러브콜이 그의 인생을 탄탄대로로 보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반면 누구에게나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이 있듯이 그에게도 어두운 부분이 있었다. 그와 그의 부인 루시와의 부부관계는 삐걱거렸고, 심각한 부부 상담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의 커리어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고, 그의 어두운 면 역시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만 같은 죽음이라는 개념 앞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조명이었다.



폴은 죽음이라는 소식을 바로 앞에 맞닥뜨린 후 허무주의에 빠져 남은 시간을 전혀 속절없이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도한 의사 답게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해 나간다. 힘이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고, 죽음 앞에서 다시 마음이 합친 부인과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글 쓰는 것에 열중한다. 죽음 앞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가졌던 그가 ‘정말 의미 있는 삶’으로 선택한 것은 결국은 타인을 위한 사랑의 실천,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만들과 후세를 남기는 것,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 지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 죽음 앞에서 폴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의 쾌락을 쫓아 삶을 내던지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개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의 이유는 어떤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면 쉽게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폴은 죽음 앞에서 삶의 마지막을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는 것을 택했다.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의 인생은 계속되고, 인류의 역사는 지속되며, 폴의 마지막 숨결이 바람을 남겨 지구 반대편에게 있는 한 독자에게까지 불어왔듯이, 죽음의 숨결로부터 남겨진 의미들이 소중한 사람들의 인생과 감정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세를 믿는 종교가 되었던, 현재의 쾌락 자체를 중시하는 신념을 가졌던, 혹은 극도의 우울감 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이던 각자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며 살아간다. 감히 각자의 신념에 섣불리 개입하거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자신은 없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명확한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 남겨진 자들에게 좋던 나쁘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성취들이 스스로에게는 의미없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에게 흔적으로 남겨지게 되는 죽음의 결말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결국에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전달하는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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