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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시인이여, 어딘가에서 내내 어여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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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6,486회 작성일 19-04-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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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시인이여, 어딘가에서 내내 어여쁘소서


-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언제부터일까. 인터넷에서 뉴스 기사를 읽고 나서는 댓글 창을 보는 게 어려워졌다. 혹시나 하고 열어보면, 그러면 그렇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사람들끼리의 ‘난투’가 가득하다. 욕설과 폭언. 인격모독. 막말. 정신승리.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러한 난리통 속에서, 마치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 같은 사람이 있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제페토’라는 별명으로 다음(Daum) 포털의 뉴스 기사에서 시작(詩作)을 해서 댓글을 다는, 이름 모를 시인이 한 명 있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누군가의 머릿속으로 쏜살같이 스쳐 지나갈 법한 생각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어 아름답게 엮어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 책은, 인터넷 시인 제페토가 그 동안 써 왔던 댓글 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의 제목인 ‘그 쇳물 쓰지 마라’을 표지로 삼아 시집으로 묶어낸 것이다. 2010년 9월 7일, 충남 당진의 모 철강업체에서 한 청년이 작업하던 도중 용광로에 빠져 산화(散華)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공중파에서 크게 회자(膾炙)되지 않아 그대로 묻히나 싶던 차에, 한 누리꾼의 댓글이 화제가 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1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그의 시는, 시리면서 따뜻하다. 때묻지 않은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에는 우는 이와 함께할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다. 어떤 작품은 비수로 심장을 후벼파는 듯이 아프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고민해 보았지만 이런 담백한 표현 이상으로 이 시인을 소개할 자신이 없다. <여름철 수면을 방해하는 주범은 ‘참매미’>라는 기사2에서 "아직도 뭍을 밟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면서,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라는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댓글을 달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나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갈래는 자유시/서정시. 성격은 서정적/사회 참여적. 반복적 어구를 이용해 운율을 형성했고 감정을 절제하는 어투를 통해 오히려 그 정서를 부각하고 있다....’ 혹시 위의 시를 한창 입시 준비에 한창이던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다면 이런 식으로 시를 분석만 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방식의 접근이 무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시가 어째서 특정 정서와 효과 등을 나타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시의 주제를 파악하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페토 시인에게는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의 시에는 대부분, 직접적으로 보이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어떤 맥락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는 신문 기사에서 전부 이야기가 끝났으므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를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제페토 시인이 유독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헤어지는 것일 뿐
다시 만남을 믿자
연말 붐비는 종로 거리에서
결혼 앞둔 카센터 청년의 콩팥으로
동갑네기 고3 소녀의 심장으로
붙임성 좋은 할머니의 췌장으로

 

알아보지 못한채 스쳐 가더라도
아파하지 말자
이물거리는 파편일 뿐이라는
속상한 말도 하지 말자
그래야만 하는 까닭은
마지막 날까지 함께 살아
울고 웃을
그대 남은 여생이기에


- <6명에 장기기증 새 삶 주고 高1 기석이는 그렇게 떠났다> 기사에 달린 댓글3

 


시선(詩仙). 흔히 중국의 위대한 시인 이백(李白)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제페토 시인의 시선(詩選)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 삶을 선물해주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의 부모를 위로하는,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視線)이 담겨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감히, 제페토 시인을 21세기의 시선(詩仙)으로 꼽고 싶다. 비록 얼굴도, 직업도, 사는 곳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래서 더 마음이 놓인다.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부르짖던 김지하 시인이 각종 막말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이 때에4, 이 익명의 시인은 영원히 제페토라는 이름으로 남을 테니까. 그러니 이름 모를 시인이여. 지금 계신 ‘제페토’의 모습 그대로, 내내 어여쁘소서.



“부디 살아갈 날들이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조금 더 안달하고 조금 더 악을 쓰면서요.”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에 대해서 제페토 시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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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news.v.daum.net/v/20100907214614352

[2] https://news.v.daum.net/v/20111207031505617

[3] https://news.v.daum.net/v/20140731021406763

[4]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9052700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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