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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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히파티아 > - 브라이언 트렌트
- Remembering Hypatia : a novel of ancient Egypt -
- 이 승 환 -
드넓은 우주, 맥동하는 세계, 그 속의 나약한 인간...
광대한 우주 속에서는 결국 지구도 점 하나에 불과하다. 우주의 운행원리를 궁금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4세기 로마 제국 알렉산드리아 령에서도 이러한 의문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함께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긴다. 잠시 눈을 감고 우주에서 바라본 둥근 지구를 상상해보면, 그 지구를 시작으로 고도를 점점 낮추어 등장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의 장관이 등장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 무제이온은 당시 사람들의 지적 열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집트의 토속 신을 향해 올리는 제사도 보인다. 그 중에 섞여있는 기독교신자의 표정을 보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나지막하게나마 읽어낼 수 있다. 긴 독서가 끝난 후 책을 덮는다. 굵직한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우주속의 동그란 지구를 상상해보면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상념에 빠지게 해준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두 가지 큰 흐름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사람들 사이 신념의 대립’이고 하나는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의 일대기’이다. 두 흐름은 장면을 달리하며, 때로는 둘 사이의 교차점을 보여주며 지켜보는 사람의 긴장을 풀기도하고 늘어뜨리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주제의식들이 책 속에서 묘사되는 당시의 생활상에 녹아있다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때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며 기존의 신앙을 바꾸던 시기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라는 교리로 당시의 기독교는 많은 신자들을 인도했다. 하지만, 유일신사상의 맹점 중 하나인 ‘배타적 종교관’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배척하고, 다른 종교의 교리를 비판한다. 이에 맞서는 이집트의 토속신앙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각의 차이, 신념의 차이’ 는 광신의 오류를 저지르며 육탄전으로 번지기에 이른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교리를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모든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당시 대도서관의 관장이자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테온’의 딸, 우리의 주인공 ‘히파티아’는 우주의 진리를 찾기 위해 현실의 벽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인물이다. 햐안 로브를 입고 일반인들에게 삶의 진리를 깨우쳐주고자 목소리를 드높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여성이라서 결혼을 하면 학문을 추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을 알기에 개인적인 사랑마저 거부하고 ‘톨레미의 천동설’, ‘아폴로니오스의 원추곡선론’, ‘아리스타르코스의 논문’ 등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고찰하는 등 후학들을 가르치며 오직 학문에 전념한다.
『 "여러분이 가진 생각하는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세요.“
(중략)
"생각하는 것은 값진 능력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능력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생각하는 능력을 모두 없애버리면, 여러분 속에는 어둠이 들어찰 것이고 그 어둠을 다른 사람들이 메우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믿어야 할지 말해주면서 절대 거기에 의문을 갖지 말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어둠 속에서 살게 되면 머지않아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
현실의 벽을 두드리는 것이 그렇게나 불경한 행동이었을까? 학문에만 전념하는 히파티아도 당시의 매서운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다. ‘이교도의 우상’으로 매도된 대도서관이 파괴되며 히파티아는 도서관의 자료를 전부 옮길 새도 없이 피신하기에 이른다. 영화에 묘사된 당시의 상황은 진(秦)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흡사하다. 누군가의 땀,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깨달음이 담긴 모든 문서들이 ‘이교도의 창조물’로 매도되어 파괴되기에 이른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우민화 정책의 일부로써 벌어진 ‘위로부터의 만행’이라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파괴는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만행’이기 때문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히파티아는 진리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해오던 의문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별들의 밝기가 변한다.’, ‘태양의 크기가 날마다 다르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등 닿을 듯 말 듯 때로는 소소한 깨달음에 기뻐하며, 때로는 짜증을 내며 천문현상을 연구하는 데에 몰두한다. 당시 사회가 인정하지 않았던 태양중심설을 재조명하고, 천체의 운동이 완벽하게 보이는 원운동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자신의 저택 테라스에서 타원을 작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일생의 업적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정답에 근접한다면, 기꺼이 죽어도 좋아.” 라고 되뇌는 히파티아에게서 ‘현실’, ‘공포’, ‘죽음’ ‘파괴’ 등 혼란스런 사회상과 맞물리지 않는, 학자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이교도들을 몰아낸 후에도 종교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교리의 해석차이로 서로를 비판하며 유대교와 가톨릭이 대립한다. “만약 어느 둘이 다른 하나와 일치하면 모두 서로 같다.” 라는 유클리드의 공리는 이런 상황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선한 인간, 신실한 인간이라는 공통점에 모두 묶여있지만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의 모순 속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으며 인정받던 히파티아도 여러 학습과 과학을 기호화 하는 것을 트집잡혀 마녀라고 불리며 이교도로 몰리게 된다.
『 "배움은…… 계속될 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막을 수 없어요. 언젠가는 여러분 모두는 잊혀질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예요!”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당신들이 저지른 살인의 피바다 속에 감히 서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
결국 히파티아는 광신교도들에게 납치되어 비참하게 살해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어라.” 등의 박애정신은 뒤로한 채 위대한 여성수학자는 그렇게 시대의 제물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 결국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서로를 미워하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마지막 헬레니즘의 몰락은 그렇게 안타까웠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시인 ‘사를르 르콩트 드리즈’은 이런 글귀를 남겼다.
플라톤의 정신과 아프로디테의 몸은
그리스의 청명한 하늘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도다.
그녀는 홀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네
죽음은 떨리는 우주를 흩트려 놓을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히 그녀의 불길로 눈부시고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다시 태어나
세상은 여전히 그녀의 흰 발아래 엎드려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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