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욕망 –엘프리데 옐리네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5,464회 작성일 19-02-28 10:28

본문

욕망 –엘프리데 옐리네크(2004 노벨문학상)

 

1.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아내 자랑을 늘어놓는다. 공장장은 짧고 강력한 몇 마디 말로 음담패설의 고지를 점령한다. 부하 직원들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않는다. 그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꼰대, 페미니즘.

두 단어는 요즘 시대를 강타하고 있다. 이 단어들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정확히 알 순 없으나 두 단어는 상대적으로 권력이 없어 사회적으로 지배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주로 사용된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꼰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남성으로부터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사용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어느 시대나 있었겠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지배계층으로부터의 폭력의 방향은 나이와 성별로 요약해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이 단어들이 크게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나이와 성별로 인한 권력의 피해를 받는 피지배계층의 권리가 신장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울컥한 마음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지만 여러 매체, 특히 인터넷을 통한 익명 매체의 보급은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활짝 열어주었다. 또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후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을 논할 수 있는 단계가 된 대한민국에는 지배계층에도 상대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을만한 심리적 여유와 지식,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은 꼰대와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확성기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할 때쯤 나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책을 선택한다. 여러 ‘인정’이 있겠지만,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골랐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처음 들어본 작가다. 작가의 아버지는 중병을 앓으며 살아갔고, 어머니는 작가를 일류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배경은 그녀를 권력형 횡포와 폭력에 희생된 여성의 모습을 급진적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다루게 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 특히 책 ‘욕망’은 남성 권력자로 그려진 ‘공장장’의 횡포가 여러 가지로 그려진다. 특히 부하 직원 및 아래 사람에 대한 횡포와 더불어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통한 여성의 수난이 다방면으로 그려진다.

 

2. 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매일 죽음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3. 그 돈은 길에서 그들이 죽기 위한 자동차가 되거나 그들이 죽음을 맞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가구 딸린 아파트가 될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책은 어두운 분위기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둘러싼 형광등의 밝기조차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지배계층으로 묘사된 ‘공장장’ 외의 책 속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이유가 없으며, 그들에게 희망은 없다. 상대적으로 조금 나아보이는 공장장의 아내는 매일 밤 원하지 않는 공장장의 성 수발을 들어야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매우 고통스럽다. 남편이지만 절대 권력자인 공장장에게 어떠한 불충도 있을 수 없다. 철저하게 핍박받는다. 책은 온갖 성적인 묘사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성적인 붉은 색도, 사랑의 밝은 색도 아니다. 오로지 어둠만이 책을 채운다.

 

4. 욕망, 백인 국회의원 같은 존재

 

욕망이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상범위를 넘어서도 안 되고 그에 미치지 못해서도 안 된다. 각 욕망의 정상범위는 개인이 존재하는 시대와 문화에서 결정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시대를 앞서가거나 시대에 뒤처진다는 말은 결국 나의 가치관이 인정될만한 시대가 아직까지 없었다거나, 그 시대가 과거의 시대였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스스로를 자위하는 합리화일 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시대와 문화에 적응해야하며 공동의 가치에 폐를 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나의 가치관에서는 그렇다.)

책에서 특별히 논하고 있는 성에 대한 욕망을 살펴보자. 국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미주, 유럽 등의 서구권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먼저 시작되어 그런지 상대적으로 성에 대해 더 개방적이다. 아마 성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산업분야가 문화를 바꿀 수준으로 크기 때문이리라. 일본과 우리나라만 해도 상당히 다르다. 여기는 정치, 문화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두 나라의 정부의 모습은 각기 진보와 보수의 모습이다. 언론과 더불어 성에 대한 태도 또한 각기 진보와 보수의 모습을 띄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약 10년간의 보수적인 문화에 절대값을 씌운 듯 촛불집회 이후 반대급부로 크게 변화되었다.

 

5. 아들은 남편의 천연색 복사본이고 완벽하게 재생산된 유일한 존재다. 아들은 자기도 한 남자가 되려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달린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들이대고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다그친다. 모든 것이 잘되고 가족들이 서로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데 여자는 자신의 삶을 건다.

 

남성, 그리고 권력자의 모습은 그 크기가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일관되게 그려진다. 이는 산업과도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고대로부터 가장 오래된 산업이 무엇일까? 성과 관련된 산업이라 생각된다. 양쪽의 필요를 서로 등가 교환하는 거래가 산업의 기초일 것이다. 신체능력에 의존해야만 문자 그대로 먹을 것이 생기던 시대에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을 활용하기 어려운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 만족을 제공함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은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에 기반하여 자연 발생한 문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그런 시대와는 크게 변화되어 있다. 한국적 페미니즘인 급진적 페미니즘의 모습을 옹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되던 양성의 역할과 지배구조는 시대와 문화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백인 국회의원 같은 존재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긴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