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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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유발 하라리, 제레드 다이아몬드 외 (오노 가즈모토 엮음)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인류를 조직화하고 현대의 문화를 가능하게 한 여러 사상 및 합의들을 있게끔 한 본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유발 하라리의 말 중 미래에 대한 예측이 현대에는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아마 영원히 지속된 성질 중 하나는 바로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한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 수렵채집 활동 시절에는 오늘 획득한 고기로 식구를 얼마 동안 먹일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날씨나 기후 조건에 따라서 덥고 습한 날은 고기가 빨리 상할 것이고, 겨울에는 비교적 보관이 용이했을 것이다. 함께 사냥을 수행한 부족들끼리 고기를 나눌 때 분쟁의 여지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또 고기를 획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생존의 문제이기에, 현재의 상태와 지금 얻은 성과를 잘 비교하여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일을 예측하고자 했을 것이다. 농경사회와 제국주의 사회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도 동일한 논리가 통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 및 환경과 본인의 능력 및 상태를 잘 저울질하여 미래에 닥칠 일을 항상 예측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에 비해 과거 시절의 다른 점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쉬웠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했으나, 적어도 봉건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30년 후에도 왕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계급이 자식들에게 이어질 것이며, 보통 40~50년 후가 되면 죽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거의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근대로 돌아와보자.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만 해도 사람들 간의 정보 전파 속도는 제한적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한 지역의 영향이 다른 곳으로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로 인해 지역 간 고유의 문화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그 문화에 의해 이어져온 관성이 그 집단의 성향이나 의사 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인들은 과거의 사례와 해당 집단의 기호에 기반하여 미래에도 그 집단은 비슷한 결정을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다. 이를 통해 선거전략을 짜고 국가 행정을 운영한다. 추상적인 개념인 돈에도 동일한 논리가 통한다. 물물교환에서 화폐 사회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폐의 신용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의 기반에는 화폐가 대변하는 가치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수확한 보리를 1000원에 팔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이라도 내가 판 양만큼의 보리를 다시 1000원 혹은 그와 비등한 수준의 가격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도, 해당 공동체가 가진 성질이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현대에 들어서 인간 문화의 기반을 있게끔 한 미래 예측 가능성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가 급속도로 짧아지고 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3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 누구도 30년 후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미래유엔보고서는 매년 갱신되어서 나오는데도 계속 팔리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세상은 이미 초연결사회이기에 정보의 전달은 전 인류에게 즉각적으로 발생한다. 정보전달 시간이 0에 수렴하고, 그 정보에 접근 가능한 인구가 거의 전체 인구에 육박해가는 시대이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집단의 의사결정을 예측하지 못한다. 사실상 집단도 예전처럼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갖고 있다. 현대의 정당들은 시시 각각 바뀌는 정체성으로 인해 이게 보수정당인지 진보정당인지 가끔 헷갈릴 정도이다. 정치인들은 더이상 명확한 의사 전달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더 이상 유권자들의 의사 결정을 예측할 수 없기에 정치인들도 아무런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그들의 말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과 동일하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기대 수명은 계속 늘어가는데,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나가고 있다. 심지어 그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미래에는 현재의 직업들 중 30% 이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직업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사람들은 본인의 직업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걱정한다. 과거에는 적어도 나의 수명이 끝나고 자식 세대가 되더라도 존재할 게 확실했던 직업이 (가업이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당장 10년 20년 후에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대니 전세계적으로 불안감이 커져 나가는 것도 당연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지금 사회가 나쁘다고 평하면 안된다. 전체적인 흐름의 방향이 그렇게 가고 있으면 이를 거스르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는 그에 맞춰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10-20대 때 배우고 30대 이후에 배운 것을 활용하여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게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에 따른 삶의 변화량은 커지고 있기에,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아마 미래에는 직업이라는 개념도 많이 희석되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국가나 집단에 소속되는 개념도 없어질 수 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북해 하지만, 현실이 이를 거부한다. 결국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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