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는 커피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다 - 이윤선, 테라로사 커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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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의 첫 만남
2015년,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선임이 휴가에서 복귀하면서 웬 어두운 색깔의 음료가 든 병을 하나 가지고 왔다. 이게 뭐냐고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커피’였다. 그러면서 ‘더치 커피(정식 명칭은 ‘Cold-brew’ 커피이다)’ 추출 방식이라는 설명과 함께 내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커피라고는 가끔 사 먹던 ‘카라멜 마끼아또’와 인스턴트 커피밖에 모르던 터라 매우 호기심이 동했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화사한 향기와 그 오묘한 맛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커피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호기심을 가득 안은 채로 2주가 지난 뒤, 드디어 정기 휴가를 나왔다.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 한 로스터리 카페(Roastery cafe : 커피 생두를 직접 볶아서 판매하는 전문 로스터가 운영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로스팅(Roasting : 생두를 볶아서 커피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작업)에 한창이던 사장님께서 나를 맞이하셨다. 커피를 볶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잠시 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한 모금 머금자마자 드는 생각이란, 아, 정성이 담긴 커피 한 잔이란 이런 맛이구나.
이 책은, 커피에 입문하고 싶다는 내 말에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책들 중 하나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니카라과 COE (Cup of Excellence : 커피 생산국에서 개최하는, 그 해 최고의 커피라는 타이틀을 놓고 각 커피 농장들이 벌이는 경연)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이윤선 커퍼(Cupper : 커피를 감별하고 평가하는 사람)의 커피 생산국 기행문이다. 책을 추천하시면서 사장님께서는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원두(로스팅을 거친 생두)를 고르는 눈을 가져야 하고, 그 눈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 잔의 커피가 생산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덧붙이셨다. 거진 4년만에 책을 펼쳤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최근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아직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 다만, 통상적으로 스페셜티 커피에 걸맞는 품질을 가지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시장에 나오는 커피들 중 스페셜티 커피로 분류되는 상품의 비율은 10%를 넘지 않는다.
우선, 생두의 모양과 냄새, 색깔을 확인한 뒤 약 300g의 생두 샘플을 관찰해 ‘결점두(defect, 기형적인 생두)’의 종류와 수를 세어 디펙트 점수를 매긴다. 이것을 가지고 1차적으로 판매 가능한지의 여부를 판별하게 된다. 이렇게 판매가 가능한 수준의 커피 중에서도 ‘1등급’의 커피를 가지고 다시 향미 평가를 진행하는데, 평가 결과 총점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점수를 취득해야만 비로소 ‘스페셜티 커피’의 칭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에는 매우 다양한 향미가 존재한다. 커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커피를 ‘한 잔에 숨겨진 우주’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커피 원두의 맛과 향을 내는 성분을 분석해보면 약 600여 가지의 화학성분이 나온다. 아쉽게도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커피의 이러한 다채로운 특징을 지나치기 쉽고 강렬한 몇몇 특징만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것은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커피 역시 저마다의 ‘종(species)’이 있는, 그리고 재배되는 산지가 어떤 기후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영향을 크게 받는 ‘농작물’이기 때문이다.
커피 나무에서 열리는 커피 체리를 수확해 열어보면 과육과 씨앗이 있다. 과육은 싱그러우면서도 달달한 맛을 내지만 매우 얇아서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 이 과육을 벗겨내어 건조시키는 일련의 가공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상품 가치를 갖는 생두가 되는데, 이 가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커피의 향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크게 ‘워시드(Washed)’와 ‘내추럴(Natural)’ 방식이 있는데, 보통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벗겨내는 데에 물을 사용하는 워시드 방식을 사용해 커피를 가공한다. 내추럴 방식에 비해 고품질의 커피를 얻기에 유리하지만 물이 많이 필요하고, 사용한 물을 그대로 강으로 흘려보내면 수질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내추럴 방식은 열매째로 말리는 방식으로, 이 과정에서 껍질과 과육이 부패하기 쉽다. 내추럴 가공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워시드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깊은 풍미를 얻을 수 있으나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는 과육을 벗기는 과정에서 남는 점액질을 일부러 남긴 상태로 건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정제된 커피를 코스타리카에서는 ‘허니 커피(Honey coffee)’라고 부른다.
이렇듯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더 풍부한 향미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이윤선 작가는, 커피 생산국을 다니며 커피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는
농부들의 노력을 직접 보면서 이 책에 기록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내추럴 가공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체리 색도계’를 도입한 브라질의 어느 농부의 이야기, 잘못된 가공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작가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인도네시아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한 인도네시아의 어느 농부의 이야기 등등. 시장이 원하는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농부들이 노력하고 있다.
커피는 한 잔의 나눔이자 사랑이다
군대 전역을 한 뒤, 사장님께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 한 달여 동안 내게 커피를 가르쳐주셨다. 커피를 배우는 동안 사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말이 있다.
“나누지 않을 거라면 커피를 할 이유가 없다”
옛날에는 커피를 공부하는 이유가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었다면, 요즘은 내 꿈을 위해서 커피를 연마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충분히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작게는 (아마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미래의 내 아내, 그리고 최소한, 내 주위 사람에게는 내 존재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커피를 삼고 싶은 것이다. 비록 지금은 보다 연구에 집중하고 내 자신을 챙기기 위한 커피를 내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책에 기록된, 한 줌의 고품질 커피를 생산하기 위한 농부들의 정성만큼이나 깊은 정성과 사랑이 담긴 커피 한 잔을 내 이웃들에게 내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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