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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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 순간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 - 패트릭 킹
- 이 승 환 -
어느새인가 강줄기가 시원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유려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의 말 한마디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오가고 사람들의 표정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것을 보면 더욱 신나서 떠들어댄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내 입 모양을 계속 주시하는 것 같다는 착각도 했다. 그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나면 내가 마치 달변가가 된 것 같은 생각도 한다. 어느 집단에 가도 이렇게 신이 나서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자리에 가면 할 말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이내 피곤해진다. 할 말이 없어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들이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인다. 왜 이렇게 이중적일까? 상반된 분위기에 나를 옛날부터 아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냐고, 어디에서부터 기분이 나빠졌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이것 참 고민이다.
2초의 법칙을 지켜라
『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이 경청되어지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당신이 듣고 있다 하여도 당신이 상대방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을 시작한다면
당신이 자신의 말을 경청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해 보이지 않을 것이니 그들이 말을 마치고 나서 2초를 기다리자.
그러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고민의 시작은 2016년 초였다. 군에서 돌아와 복학 한 2015년에 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나는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보며 나름의 자신감을 얻었다. 부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신입생, 다른 동아리의 임원진, 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 때로는 교수님까지 다양한 사람을 짧은 시간에 많이 만났다. 그러는 와중에 어디를 가도 사근사근하게 말을 붙일 수 있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상대의 마음속 깊이 빠질 수 있는 그런 잠수부와 같은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부회장의 임기가 끝나고 자리에서 내려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방학 중에, 친한 후배가 자기가 옛날부터 알던 여자를 소개해주고 싶단다. 당시에 만나는 사람이 없던 나는 “나쁠 것 없지.” 하면서 약속 장소인 강남역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 성큼성큼 강남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역시 오랜만에 이성과 둘이 있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을 생각하고 긴장했던 탓일까? 그녀는 사정이 있어 약속 장소에 약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내가 긴장한 상태라 그런지 그녀를 기다리는 1분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초조해졌다. “내가 도중에 뭔가 실수한 게 있나? 그냥 오다가 집으로 돌아간 거 아니야?”, “왜 안 오냐고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너무 닦달하는 것 같겠지?”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혼자서 집필하고 마감하고를 반복했다. 초조해하며 기다린 탓인지 그녀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귓등으로 들은 채 내가 할 말만 내뱉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주말에 뭐 하세요? 취미는요?”
등의 같은 의미 없는 질문을 마구마구 내던지고 재미없는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녀는 소개를 받으러 온 자리에서 면접을 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좀 더 과장해서 표현하면 낭만적인 카페가 아닌 강력계 형사와 마주한 취조실과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뻔한 답이 기다리고 있는 재미없는 질문이 끝나면 장황한 나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에 상대방이 심심해할까 봐 지레짐작했다. 할 이야기가 떨어지면 이런저런 농담으로 덕지덕지 무장한 파상공세로 억지웃음을 끌어냈다. 물론 모두가 예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억지스러운 하루를 보낸 뒤에 그녀와 연락이 끊겼다.
흔히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더 강하다. 조명을 받는 사람에게 그 관심을 빼앗는 것은 아주 나쁜 행위인데, 나는 대화의 주제를 자꾸 내 쪽으로 바꿨다. 이럴 때 책에서 말하는 2초의 법칙이 필요하다.
2초의 법칙은 간단한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다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2초를 기다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한 것을 전부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2초를 기다린 후 반응을 보인다. 이때 표정이 중요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말하고 있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듣는 사람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신호를 원하는데, 이를 위한 2초의 공백이 있다면 상대방은 만족할 것이다. 청취기술은 상대방의 정보를 완전히 흡수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듣는 사람이 좋은 청취자처럼 보이게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말 한 뒤에 스스로 만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만약 그날 좀 더 여유를 갖고 자리에 임했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와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만용이고 억측이지만, 적어도 그녀와의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그런 딱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듣는 사람의 언어로 말하기
『 상대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어 그의 수준에 맞추어 대화해야한다.
그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그가 편하게 느끼는 지점을 찾아
익숙하고 그와 비슷한 타입의 사람으로 당신을 인지하도록 만들자.』
그렇게 딱한 사건을 뒤로하고 동아리의 초청을 받아 2016년 3월에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양양으로 떠났다. 전년도 운영진이었던 나는 본래 차기 운영진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신입생 환영회로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차기 운영진이 전 부회장인 나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여행 경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 말을 하여 간사한 마음에 홀랑 버스에 올라탔다. 당시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하는 동아리 회원 중에서 내가 최고 연장자였는데, 이 때문에 분에 맞지 않은 대우를 많이 받았다. 한 푼도 내지 않은 여행에서 제일 넓은 침대를 혼자서 쓰는 등 호화스러운 사치를 부렸고, 최고참의 위치에서 회원들에게 나름의 임무를 부여했다. 낮에는 나름대로 이전부터 알고 있는 얼굴이 많아서 그런지 농담도 주고받고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 신입생을 맞이했는데, 차기 운영진이 많은 회원을 유치하기 위해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최고참인 나의 능력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신입생과 후배들은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대 위 공포증’을 느꼈다. 좌중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 횡설수설하며 재미없는 스탠딩 쇼를 시작했다. 웃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신입생들은 따분한지 휴대전화기의 화면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모두가 잠들 무렵 동아리의 회원들은 그날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피곤한 몸에 잠을 청했지만, 나는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하는 등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억울한 마음에 뜬 눈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괜한 마음에 자려고 이불을 덮은 회원들의 머리맡으로 가서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격려만 할 뿐이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돌아온 뒤에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그때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2016년도에 입학한 동아리 회원들과는 부끄러운 마음에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등 두더지처럼 숨었다. 당시에 내가 듣는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편안함은 성공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데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물론, 지나치게 편안할 필요는 없지만, 대화하는 상대나 화제가 불편하다면 상대는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입을 닫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신입생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당시의 신입생 나이에서 통용되는 유행어를 조금씩 섞으며 신입생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어떨까? 그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영역에 들어가 그들이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2012년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 신입생 환영회에 앉아있던 나는 긴장된 상태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동기라고는 하지만 처음 본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었고, 처음 보는 대학 선배를 보면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조마조마한 가슴이었다. 2016년의 신입생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부담만 주었다.
젊은 사람의 생각은 신선하다. 의외성이 다분하며 고착된 해결책을 모르기 때문에 경험자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이 때문에 나는 나중에 늙으면 고정관념과 권위를 내려놓은 채 젊은 사람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며 생각을 산뜻하게 환기하고 싶다. 2016년 3월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름의 규칙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세대 간의 격차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적어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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