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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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서울대 추천 도서 100권을 읽는 것이 군대 생활을 하면서의 한 가지 목표였다. 물론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하나씩 사 모으다 보니 꽤 많은 양이 집에 쌓여 있다.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한국 근, 현대 문학에 이르는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본 책들이 먼지만 모으고 있는 모습이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중에서 설국이라는 책을 구해주기로 했다.
설국은 1968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는 동양인으로서는 두번째 일이라고 한다. 설국은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36세이던 1935년부터 48세인 1947년까지 여러 문예 잡지에 발표했던 12편의 단편들을 모아서 그 이듬해에 완결 출판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벽하게 구성하기 위해서 13년간에 걸쳐 꾸준하고 끈질기게 깎고 다듬은 예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저자가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플롯을 원하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진행되는 사건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도 많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이게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점은 감정의 묘사이다. 상황과 배경에 대한 사실적이고 자세한 묘사에 대한 기대를 잠시 옆으로 거두어 놓고 나면 보이는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들을 유려한 글솜씨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인스타그램 등의 사진을 위주로 하는 SNS에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게시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 ‘갬성샷’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사진들이 그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추상적이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진의 분위기를 통해서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현대인들이 말하는 ‘갬성’을 구체적인 언어로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표현 방식이 바뀌었을 뿐 사진이나 SNS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분명 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설국은 그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책이다.
"현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멎었다."
소설의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이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눈 내리는 일본의 거리를 걸은 경험이 떠올랐다. 여행의 마지막 날의 감정과 아무도 없는 거리에 적막 속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모여 이루는 분위기에 눈까지 내리자 고즈넉한 일본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때때로 바쁜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 그런 순간에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이 책의 제목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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