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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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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진섭
댓글 0건 조회 5,491회 작성일 19-03-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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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병수’는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25년 전의 마지막 살인을 끝으로 흥미를 잃어 살인을 그만두었고, 희생자의 딸 ‘은희’를 입양하여 조용히 살아간다. 그의 30년 동안의 살인들은 흐트러짐 없는 계획과 증거를 남기지 않는 그의 철저함 덕분에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마저 지났기 때문에 범행들은 미제사건으로 남겨졌고, 그는 처벌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소설은 세월이 지나 70세가 된 ‘김병수’에게 치매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의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지면서, 그는 하루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해 녹음기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가까운 기억들과 달리 그가 오래 전에 행했던 살인들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치매가 시작되면서 마을에는 다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딸 ‘은희’에게 ‘박주태’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박주태’를 만난 ‘김병수’는 직감적으로 그가 살인자임을 확신하고 그에게서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려고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한동안 ‘은희’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며칠 뒤, ‘김병수’의 집에 형사들이 찾아오고, 그들에게서 ‘은희’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노한 ‘김병수’는 형사들에게 범인으로 ‘박주태’를 지목한다.


그런데, 갑자기 집 안에 들어온 형사들이 ‘김병수’를 체포한다. 그리고 그들은 ‘은희’를 죽인 사람은 ‘김병수’이며, ‘은희’는 딸이 아니라 ‘김병수’를 간호하는 요양보호사였고, ‘박주태’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조사를 받으면서 그는 25년전까지 자신이 행했던 살인들을 모두 밝히지만, ‘김병수’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은희’를 죽인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이해를 못 해. 누구보다 그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게 바로 나라는 것을. 형사 양반, 나도 기억을 하고 싶다고. 왜냐하면 나한테는 너무 소중한 것이니까.”


소설에서 ‘김병수’는 연쇄 살인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발각되지 않아 처벌조차 받지 않는 인물이다. 공소시효마저 지나 더 이상 법적으로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어쩌면 치매는 사회에서 처벌할 수 없는 그에게 신이 내리는 가장 잔혹한 처벌이 아니었을까? 신은 ‘김병수’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인생, 특히, 유일한 가족인 ‘은희’에 대한 기억을 부정당하며 느끼는 그의 혼돈, 허무함, 그리고 절망감을 통해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보다 쉽게 읽혔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간결한 문장들과 어렵지 않은 문체, 그리고 빠른 상황 전개라는 작가의 문체적 노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너무 쉽게 읽었던 이유에서 일까? 나는 결말의 반전이 오기 전까지 글에서 써내려 간 ‘김병수’의 왜곡된 1인칭 기억에 속고 있었다. 그가 서술한 상황에 대해 의심하지도 않았고, 사실인 줄만 알았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작가는 의도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고. 때문에 우리는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사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작가는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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