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 - 파블로 피카소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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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어렸을 때 겪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어렸을 때 들었던 ‘방문을 닫고 선풍기를 켜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죽는다’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선풍기를 틀고 잘 때면 방문을 살포시 열어 놓는 것부터, 어렸을 때 학대받았던 경험들이 기억 속에 남아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아무리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애써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이지만, 어렸을 적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중에 뿌리내린 것들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대구에서 가장 학구열이 강한 수성구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이 지역은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국영수와 같은 주요 과목들이 아닌 미술이나 음악, 체육과 같은 예체능 과목을 관심 있게 듣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특히, 예체능 과목의 이론 시간에는 교과서 밑에 수학 문제집을 놔두고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 또한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학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술 시간이었다. 그날은 유독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은 날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잠시 펜을 놓았다. 그때 미술 선생님께서는 피카소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계셨다. 미술 교과서에는 장난스럽게 그려놓은 듯한 피카소의 그림들이 즐비해 있었다. 학생 중 누군가가 이런 그림은 유치원생도 그릴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피카소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초등학생의 나이에도 정상적이고(?) 훌륭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유치원생처럼 그린 것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이후로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그 천재적인 재능을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쳤다고 말씀하셨다. 수학 문제에 진저리가 나기도 했고, 선생님의 수업에 흥미가 생겨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피카소의 이야기를 듣다가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게르니카>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1936년 스페인 제2공화국에 인민전선이 수립되자, 이에 반대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의 지원이 별로 없었던 인민전선과는 달리 프랑코 군대는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원을 받으며 인민전선과 대립했다. 그 와중에, 프랑코를 지원하는 나치가 신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스페인 북부지방의 한 도시인 게르니카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약 1,600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게르니카 사태를 보고 피카소는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중단한 채, 한 달 반 동안 밤낮을 매진하여 <게르니카>를 완성했다고 한다. 처음 보았던 <게르니카>는 수십 cm밖에 되지 않는 미술 교과서 안에 작게 인쇄되었음에도 폭격 당시의 참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고,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생 때 우연히 들었던 게르니카 이야기는 이후 몇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잊혔지만, 내 무의식 속에 각인되었다. 그때 이후로 십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잊힌 줄 알았던 게르니카 이야기는 여전히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내가 이번에 스페인 여행의 계획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여행 계획을 짜다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게르니카> 작품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 비행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정을 수정했다. 흔히들 그다지 볼거리가 없다는 마드리드를 단지 게르니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정에 넣은 것이다.

게르니카 (캔버스에 유채, 349.3 x 776.6 cm, 1937년작,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국립미술관)
결국,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게르니카를 내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가로 7m, 세로 3m가 넘는 크기의 작품은 모든 관중을 압도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도 게르니카 앞에 멍하니 몇십 분간 서 있었으니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게르니카를 봄으로써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르니카의 아우라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차별적인 폭격에 무기력하게 학살당하는 참상이 실제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단지 이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서 마드리드에 왔다는 사실조차도 아깝지 않았다. 중학생 때 교과서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그 이상의 감동이 온몸에 흘러넘쳤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 작품이 존재했던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동할 힘을 준다. 일제 강점기 윤동주의 시가 그랬고, 이육사의 시가 그랬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예술 작품을 막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위대한 작품은 단순한 말 한마디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준다. 피카소는 나치의 만행을 <게르니카>라는 작품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렸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명작은 역시 강력한 힘이 있다.
요새 많은 청년이 보수화가 되어가고 있다.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는 것을 보고 역시 김정은이 그럴 줄 알았다고, 무슨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며 이야기하면서 내심 흡족해하는 사람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북한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며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들이 전쟁을 예찬하기 시작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먹고 살기 각박해지는 세상이기에 청년들은 제 밥그릇을 챙기기 시작했다. 중학교는 단지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입시가 아닌 공부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버리고, 국영수와 사회, 과학이 아닌 과목들은 일부 예체능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조차도 미술과 음악 수업은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떤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간접 경험도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 나아가야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것처럼, 많은 것들을 간접 경험한다면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산이다. 이런 간접 경험들이 모여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성장시키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가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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