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 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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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의 밑바닥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토속신앙(土俗信仰) 곧 무속 신앙(巫俗信仰)이 있다.
그 위에 천여 년에 걸친 불교 사상이 얹혀있고 또 그 위에는 오백 년의 유교사상이 얹혀있다.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와 서구의 사상들이 표면을 덮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마저 곁들어 있어
한국은 동서고금의 모든 지혜가 갈무리 된 곳간과도 같다. 즉 비빔밥이다"
- 이훈구 교수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적인 민족이다. 5천만의 인구가 사는 작은 나라지만 도심에는 수만개의 교회가 세워져있고, 산에는 수만개의 절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우리나라의 영성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교회나 절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입시 작정 기도회 같은 것이다. 이 시기만 되면 수많은 수험생 부모들이 종교를 가리지 않고 하나의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우리 아이 잘되게 해주세요', '꼭 원하는 대학교 붙게 해주세요' 등의 기도이다. 우리나라의 종교 속에는 본인에게 득이 되는 복을 바라는 신앙의 형태인 기복신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문화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샤머니즘으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서로 별반 다를바가 없다. 그저 바라는 대상과 형식이 다를뿐, 모두들 샤먼 (목사, 승려)에게 복을 빌 뿐이다.
기복신앙만큼 우리나라 종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이다. 지금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구시가지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간혹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확성기를 들고 다니거나 스피커 등을 통해 찬송가를 틀고 다니기도 한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이생에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죽음 뒤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예수를 믿고 천국 가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마주쳐야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와 신비로운 사후세계에 대한 경외감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종교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기복신앙과 사후세계에 대한 신앙으로 한국 교회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들을 많이 상실하거나 변질시켰다. 그 중에 하나가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념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천국 / 하나님 나라란 이 땅에서 선하게 살면 죽은 뒤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고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천국은 죽음 뒤에 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그의 사역 중에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죄를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말인 즉은,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 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당시 예수의 이야기를 듣던 이스라엘의 유대인들도 분명 이 말씀에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
그럼 그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책 "하나님 나라"의 저자 박철수 목사는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의 의지가 유효한 영역,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즉 쉽게 말하면 푸틴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푸틴의 나라고, 국민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국민의 나라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욕심에 지배 받는 욕심의 나라도 아니고, 두려움에 지배 받는 두려움의 나라도 아닌, 하나님의 속성 - 사랑과 평등과 자비와 평화 - 에 지배를 받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어쩌보면 하나님 나라라는 존재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와 유토피아니즘은 그 혁명성과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갈망에 대해서 닮았다. 하지만 기독교와 유토피아니즘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유토피아니즘은 사람의 이성으로 인한 합리주의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본래 기독교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속성을 배우고, 가르치고, 또 삶에서 이를 '실천'하는데 힘써야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 걸고 모여서는 서로 친목질만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 가치를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다면 그 모임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모임이 된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한국 교회들은 이러한 모임 수준에 머무리고 있다. 샤머니즘과 자본주의가 유입된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신자들의 개인적인 복을 영위하는 기복신앙과, 죽음 뒤에 삶에 대한 보험과 같은 구원론, 그리고 모인 자본을 통해 교회라는 이름의 거대한 바벨탑을 쌓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박철수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 이러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맹렬히 비판한다. 가난, 기아, 질병, 전쟁, 차별, 폭력, 억압 등의 형태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약한자들의 고통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물론 교회로 모인 자본 중 상당한 부분이 사회복지로 나아가긴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가 돈을 어떻게 쓰냐가 아니다. 교회를 이루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기고 불의한 제도의 타도에 관심을 기울이냐는 것이다. 사회 문제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하나 없이 자신의 복과 내새의 평안만을 간구하는 기독교인들을 모습은 분명 한심하게 비춰질 것이다.
예수는 갈릴리 호숫가의 산 위에서 팔복이라는 이름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곳이 되야하는지 가르친다. 팔복을 통해 예수는 하나님 나라는 1)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나라, 2) 슬퍼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 나라, 3) 선한자가 땅을 얻는 나라, 4) 정의에 굶주린 자가 채움 받는 나라, 5)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자가 자비를 얻는 나라, 6) 마음이 순수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나라, 7) 평화를 이루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나라, 그리고 8) 정의를 위해 수난 당하기 마지 않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나라라고 선포한다. 이러한 나라를 생전에 볼 수 있을까 싶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개인주의의 시대, 서로를 혐오하고 위정자조차 혐오를 조장하는 시대, 인간의 생명보다 돈이 더 가치를 얻는 황금만능주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세우는 것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5년 한일 굴욕 외교 반대 국민운동과 1969년 삼선개헌 반대서명을 주도했던 목사이자 사회 운동 지도자 김재준 목사는 "기독교는 책의 종교가 아닌 예수를 닮으려는 종교다"라고 말하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교회에서 살아온 나는 지금까지 기독교를 배워만 왔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머리로 알고, 지식을 쌓고 열심히 기독교를 배우는 것에만 힘써왔던 것 같다. 하지만 참 기독교인이라면 행동해야한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치를 세상에서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세상이 변할 것 같지 않아도 자신이 서있는 조그마한 공간에서부터 변화를 꿈꾸며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 사회의 문제와 약자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 바라보지 않고, 마치 예수의 눈으로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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