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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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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606회 작성일 19-01-0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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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 백승종

 

호랑이는 죽으며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며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사람만큼 죽으면서 많은 것을 남기는 생물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서 남긴 무언가 때문에, 같이 남겨진 자손들이 혜택을 보는 상황도 있다. 또는, 남겨진 것을 두고 으르렁대면서 싸우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은 죽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남기는데, 자손들이 이어 받을 경우 이를 법적으로 ‘상속’이라고 한다. 좁게는 재산만을 칭하는 경우에서, 넓게는 사회적 지위와 인맥까지 망라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대기업 오너 가문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승계와 정치인의 지역구 물려받기 등이 있다. 이런 ‘상속’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사회적 중심에 있었고,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는 논쟁이 되기도 한다. 상속한다는 것은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출발선과 안전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에나 지금이나 경제적-사회적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상속은 때론 국가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유교적 종법 질서와 전제적 군주정이 일찍 수립된 동양과는 달리, 로마 제국이 붕괴한 중세 서양은 귀족 가문들이나 제후들끼리 결혼을 통해 자식들에게 영지를 상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속 때문에 시대마다 패권국가가 바뀌기도 하였고, 전쟁은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이를 통칭 왕위 계승 전쟁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일어난 ‘백년전쟁’이다.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직계 없이 사망하였는데, 당시 후계자는 크게 두명으로 압축되었다. 사촌형제인 필리프 백작이 있었고, 여동생의 아들인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있었다. 당연히 영국왕에게 왕위를 주기 싫었던 프랑스는 살리카법을 들먹이면서 사촌간의 상속을 인정해버렸다. 여기에 새로 즉위한 프랑스왕 필리프는 가스코뉴와 플랑드르의 지배권을 두고 영국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3세가 필리프 4세의 외손자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전쟁을 일으킨다. 이 사건이 근대 유럽 국가를 형성하는 시초가 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100년 전쟁으로 약해진 프랑스와 영국을 대신해서 16세기 유럽의 패권국이 된 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독일-스페인 왕국이다. 카를 5세가 할아버지에게는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를, 할머니에게는 프랑스 동부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는 스페인와 이탈리아 남부를 물려받아서 중세 유럽 최고의 금수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스페인과 독일은 다시 쪼개지고,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2세가 후계 없이 죽으면서 후계자로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를 지목하였다. 물론 프랑스의 패권 국가를 추구하는 루이 14세는 대찬성을 보였다. 손자에게 스페인 왕위를 주고, 나중에 프랑스 왕위까지 물려주면 서유럽 최강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가 스페인을 집어 삼키는 것을 두고 못 보는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들은 이에 맞서 전쟁을 벌였는데, 이게 바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 왕이 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스페인왕과 프랑스 왕은 겸직을 금지한다’는 조약을 맺으면서 끝나버렸다. 뒤이어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면서, 약화된 오스트리아를 대신해서 프로이센이 중부 유럽의 강자로 일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혼인과 상속을 통해 몸집을 불려나간 국가들이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나면서 갈등을 키워오다가 일거에 터진 것이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라고 볼 수 있다. 상속을 통하여 국가의 덩치를 키웠지만, 남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질투심이 겹치면서 갈등이 쌓여 왔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물론 국가간의 상속 자체가 세계대전의 원인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이 국가간의 상속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어 서로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물론 과거시절이라고 해서 상속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다. 이런 폐단을 개혁하려는 사상적 노력은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시절에서부터 있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이 사적 욕망을 절제하여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고, 사회적 고위층이 사적 소유의 재산을 포기해서 공유 재산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이상적인 사상이겠지만, 보자마자 본인 느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욕망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의 공유화는 어렵고 오히려 부를 증식하는 사회적 발전의 동기마저 해칠 우려가 있다고. 그리고 본인이 느낀 것 처럼, 공유 재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거세게 비판한 사람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되시겠다. 모두들 상속에서 오는 부의 독점과 계층의 되물림이 가져오는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였고, 현재는 자본주의 체제에 상당한 수정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사회 복지 정책이나, 누진적 세금 체계, 상속세 등등이 지난 인간 역사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재산을 증식하여 부를 이룩하는 것에 대하여 장려하면서도, 부의 되물림을 통하여 사회의 양극화를 막고자 하는데 시민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물려주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막을 수 없다. 이렇게 모순된 ‘상속’이라는 인간 사회의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부의 양극화를 억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인간 역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상속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모순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합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완전한 결합으로 사유 재산의 사회적 환원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부를 독점하고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사유 재산을 공공성에 맞게 행사하게 될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의문점으로 남는다. 결국 이를 강제할 수단은 법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을 제정하는 사회적 지도층은 국민과 사회 전체의 관점 보다는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이익집단과 금권 세력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표로 먹고 살아가는 정치인은 언론과 지역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부를 독점한 소수와 결탁한다면 민주주의는 있으나 마나 한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누적된 사회적 양극화는 계층 간의 극단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사회적 대혼란이 일어나 폭력적인 수단으로 안정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럴때는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누구나 평등하게 다치거나 죽어버리기도 하고, 기존의 시스템에서 이룩한 부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 서게 되어 양극화가 해소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부를 독점한 소수 세력은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라는 점은, 상속에 의한 양극화와 계층 고착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노력을 ‘기업들 죽이는 정책’, ‘사유 재산 침해’,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폄훼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낙수효과’ 같은 헛소리도 이제는 제발 좀 그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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