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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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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036회 작성일 19-01-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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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저

 

  정전이 일어나면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은 비상상황에 빠진다. 반도체 공정을 하는 연구실의 특성상 많은 실험 장비가 필요하고, 이 장비들은 고진공이 유지되어야 하기에 24시간 내내 장비와 진공 펌프가 가동되어야 한다. 정전이 발생하면 가동되던 장비가 모조리 꺼지기 때문에 열심히 뽑아놓았던 진공이 깨질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정지에 장비가 고장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전이 발생하면 장비를 관리하는 학생들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장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여름만 되면 블랙아웃(black out)을 걱정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가 24시간 내내 장비를 가동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24시간 내내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어딘가에서 발전소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말과 같다. 전기를 생산하는 여러 발전소 중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생각하면 흔히들 단지 ‘석탄을 태워서 전기를 생산한다’라고만 알고 있지 어떤 환경에서 발전이 일어나는지, 그곳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사실들을 지난해 12월 11일에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의 사고로부터 알게 되었다.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가 되는 석탄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서 이동한다. 날리는 석탄 분진을 막으려고 물을 뿌리는데, 석탄 찌꺼기와 물이 섞인 물질은 컨베이어 벨트의 이곳저곳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전기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지 못한 채 석탄 찌꺼기들을 치운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는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거기에 말려들면 목숨이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시신을 제대로 수습할 수도 없다고 한다.

 

  2018년 12월 11일, 크리스마스가 2주도 남지 않은 날에 꽃다운 청년에게 비극이 발생했다. 석탄 가루 때문에 4~5m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작업 현장에서 달라붙은 석탄 찌꺼기를 혼자 치우다가 24세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사망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청소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원칙상으로는 2인 1조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혼자서 그 위험한 곳을 관리하게 했다. 넓고 어두운 그곳을 혼자 일을 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지 5시간 뒤에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주의 사회가 24세 꽃다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더욱더 놀랍고도 끔찍했던 사실은 이러한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담당자가 전기 생산을 위해 사고가 발생했던 그 컨베이어 벨트를 다시 가동시킨 것이다. 동료 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이번 사건처럼 사고로 노동자가 죽는 경우가 많지만, 좀처럼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관리하는 담당자는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큰 생각 없이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가동시켰으리라. 뉴스를 보는 내내 욕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산업 현장에서 죽는 사람이 1년에 2000명이다. 하루에 5명인 셈이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혹은 누군가의 자식이,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가 이렇게 하루에 5명이 사망한다. GDP 3만 달러가 눈앞에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공기업 관리자들의 태도가 끔찍하고 놀라웠다. 7, 80년대도 아닌 2018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어쩌다가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하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비참한 환경의 일자리가 생겨났던 것일까. 왜 그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전기 생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일까.

 

  이러한 원인은 과거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부터 민영화 및 외주화의 흐름이 진행되었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을 자본가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었고, 이러한 흐름에 따라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태안발전소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이었고, 서부발전의 하청의 하청 회사에서 故 김용균 씨는 근무했다고 한다. 서부발전을 비롯한 많은 큰 회사들은 위험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을 하청 회사에 맡긴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오롯이 자신들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맡기는 것이다. 일을 외주화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외주화한다. 이렇게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서 태안화력발전소는 3년 동안 각종 사고로 하청 노동자들이 4명이나 숨졌는데도 무사고인증 업체로 인정을 받았고, 산재보험료를 20억 원 이상 감면받았다고 한다. 효율을 따지는 신자본주의는 위험도 돈을 주고 팔 수 있는 모양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새파란 청춘이 목숨을 잃은 2018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지 40주년이 된 해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되던 197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억압받은 소외 계층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이 책은 1978년 출간된 후 현재까지 40년간 꾸준히 사랑받았다. 조세희 작가는 이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읽힐지 몰랐다고, 놀랍다고 말했다. 그리고 70년대 본인이 느꼈던 문제들이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까지 읽히는 게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했다.

 

  은강방직의 기계들은 쉬지 않고 돌았다. 영희의 푸른 작업복은 땀에 젖었다. 영희가 조는 동안 몇 개의 틀이 서 버렸다. 반장이 영희 옆으로 가 팔을 쿡 찔렀다. 영희는 정신을 차리고 죽은 틀을 살렸다. 영희의 작업복 팔 부분에 한 점 빨간 피가 내배었다. 새벽 세 시였다. 새벽 두시부터 다섯시까지가 제일 괴롭다고 영희는 말했었다. 영희는 눈물이 핑 돈 눈을 돌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p. 218

 

  꿈속에서 들은 것과 같은 울부짖음 소리를 나는 은강에서 들었다. 알루미늄 전극 제조 공장의 열처리 탱크가 폭발했을 때였다. 주물 공장 용광로에 연결된 탱크가 폭발하는 순간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았다. 쇳물, 쇳조각, 벽돌, 슬레이트 부스러기들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렸다. 주위의 공장들도 지붕이 날라가고 벽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다. 우리가 달려가보았을 때 공장 부근에는 공원들의 몸이 잘려진 채,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작은 공장이었으나 한순간 은강에서 제일 큰 소리를 냈다. 겨우 살아난 공원들은 동료의 몸 옆에서 울부짖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p. 219

 

  실제로 1970년대를 묘사하는 이 책의 내용을 보면 2018년의 태안발전소의 사고 현장과 뭐하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은 그때보다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에 '너희가 공부를 안 해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고 그런 곳에서 일하는 거지. 이런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정규직이 되려는 속셈이 아니냐'라며 댓글을 단 사람도 있다. 심지어 아들의 죽음에 분개하여 더 나은 작업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故 김용군 군의 어머니에게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국민이 신자본주의 사상에 젖은 2018년의 대한민국은 누군가에게 오히려 1970년대보다 더 지옥 같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p. 280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만 신경 쓰고 쳐다보는 것 같다.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면서도 자기보다 힘들거나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본인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잘못된 사회구조로 탓을 돌리면서도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손가락질한다. 태안발전소 사고의 뉴스의 댓글에 ‘그러게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사고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소위 '김용균 법'이 통과가 되느냐 아니냐에 대해 국회에서 시끄러웠다. 국회의원들이 진정 국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통과되어야 했을 법이지만 야당들의 방해 때문에 한창이 지나도록 통과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 법이 이토록 통과되기 힘들다면, 지금의 야당들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에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애석할 따름이다. 다행히 새해가 되기 며칠 전 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원안보다 처벌 수위가 약해진 채로 통과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절대로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군부 독재가 바뀌어 현재 민주화 사회를 이룬 것처럼, 외줄타기 하듯이 위험한 우리나라의 근로 환경이 점차 나아지고 있으며, 또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역사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진보도 항상 그때그때의 1보만이 진보이며 2보도 3보도 n+1보도 결코 진보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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