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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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홍익대학교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전창림 저
고교시절에 화학 선생님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하셨다. 수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셨고 수업도 참 재미있게 진행하셨으며 무엇보다 미인이셨다. 선생님에게 감화 받은 몇몇 학생들은 화학 반에 들어가서 방과 후에도 선생님과 같이 실험을 하곤 했는데 오랜 세월 그토록 외워지지 않던 주기율표가 삽시간에 외워질 정도였다. 그런 화학이 그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그림의 재료와 색이 모두 화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완성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색이 변하고 그림이 벽면에서 탈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템페라와 유화기법을 혼합하여 사용한 때문이다. 템페라에 사용된 계란 노른자와 유화물감의 기름이 수지불균형을 일으켜 상분리가 일어났다는 것인데 르네상스의 천재로 불리는 다 빈치가 화학적 지식이 부족했거나 실험정신이 지나쳤던 탓에 불후의 명작이 온전히 보존되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이 첨부되지 않으니 링크를 남기며 비교를 위해 직접 확인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최후의 만찬, 링크 : http://www.ofmkorea.org/index.php?document_srl=6400&mid=ofmsacredpicture&listStyle=viewer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링크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5%B4%EB%86%80%ED%94%BC%EB%8B%88_%EB%B6%80%EB%B6%80%EC%9D%98_%EC%B4%88%EC%83%81
다 빈치보다 반 세기 정도 앞선 1400년대에 살았던 얀 반 에이크는 식물성기름인 아마인유를 이용하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그렸는데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붓터치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 회화를 배워온 후발주자인 플랑드르 화파가 유화의 기법을 창시하여 현대 회화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회화의 기법을 완성해냈다.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아직도 작품이 견고하게 보존되고 있으니 회화의 재료와 기법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두 사람의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 달라진 셈이다. 신부의 드레스를 칠한 선명한 녹색은 '말라카이트 그린'으로 매우 비싸서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아주 부자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울트라 마린'이라는 파란색은 너무 고가여서 성모 마리아의 옷에만 칠했다고 하니 화학염료의 개발로 학생들도 원하는 색으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현대사회가 되기까지 과학자들의 수고와 희생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명화의 상태를 원본과 같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염료가 중요하다. 염료를 칠하는 법에 따라 색이 오래 보존되기도 하고, 검게 변하거나 발해버리기도 한다. 이 책에는 프레스코 기법, 템페라 기법, 유화 등 화가들이 색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발한 기법에 대한 소개도 곁들여져 있다. 과거 흰색에는 인체에 해로운 납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고, 붉은 색 염료는 구하기 힘들어 매우 비쌌으며, 검정색을 만드는 다양한 법 등 흥미로운 염료이야기가 소개되어있다. 또한, 화학원소, 화학자를 그린 명화, 광학과 색채과학, 스펙트럼 분광학과 인상주의, 과학적 상상력, 화가의 시선, 역학, 구도 등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과학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렘브란트의 야경, 링크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samhh&logNo=13017189807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화학 반응으로 제목이 바뀐 것도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렘브란트의 야경>이라는 그림이다. 야경은 원래 대낮을 그렸는데 당시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 연화물 계통의 안료와 선홍색을 띠는 버밀리온이 화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납과 황 성분이 검출된다고 한다. 납과 황이 결합하면 황화납이 되어 공기 중에서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이런 화학 반응이 그림의 제목까지 바꿔놓다니 신기할 뿐이다.
내가 전공하는 것 이외에 흥미를 갖고 즐기는 것이 있다면 인생은 보다 풍요로워 질 듯 하다. 화학자와 미술가. 언뜻 보기엔 접점을 찾기 힘들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서로 뗄 수 없는 조합이다.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내고 또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에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이룩해온 과학적 지식들이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니. 가히 놀랍다. 반대로 만약 예술적 욕구에 힘입어 과학지식이 축적되고 기술이 진보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만약 악기에 관심이 많아서 더 곱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싶은 경우, 연주 방법을 고민하며 공기 역학을 악기의 재질에 집중하며 재료역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인류가 태초부터 행해온 예술이라는 분야는 괜히 과학기술에 선행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은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고 역사 속에 힌트는 존재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우리 모두는 직업, 전공 이외의 취미에도 시간을 할애하여 인류의 기술적 진보를 위해 역설적인 노력을 해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겠다는 재밌는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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