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세기말의 오페라
페이지 정보

본문
대학교 학부 3학년 가을학기, 수강 중이던 뮤직 앤 뮤직 히스토리 수업을 듣는 도중 교수님께서는 유도동기를 설명하시면서 바그너의 음악을 들려주셨다. 바그너, 분명히 근대 음악사에서 들어본 이름이지만 그의 음악을 직접 찾아서 들어본 경험은 없는 까닭인지 교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니벨룽겐의 반지의 발퀴레는 처음에는 상당히 생소하게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이용하여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를 부추기는 매체로 사용했던 역사가 있었고, 바그너의 음악은 어렵고 길다는 지인들의 평가도 있었기에 그의 음악을 접하고자 하는 마음도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수업을 통해 들은 바그너의 음악은 분명히 화려하고 웅장하며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음악이었다. 유도동기라는 내용은 배운 후 유도동기를 귀로 찾으면서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과정 또한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나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흥미롭고 웅장하긴 하지만 여전히 반유대주의자의 음악, 나치 선동용 음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마지막으로 들은지 3년이 지나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바그너의 전기를 기록한 책을 발견하였다. 책 표지에 그려져있는 게르만 양식 특유의 투박하고 조금은 기괴한 그림체의 삽화는 나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내 머리 속 부정적인 편견으로만 그려져있는 바그너의 이미지에 실제적인 그의 생애를 담기위해 그의 생애의 역작 니벨룽겐의 반지의 관현악판을 들으며 책을 들었다.
전기 속에서 그려진 바그너는 평생을 걸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바그너는 바이에른 왕국의 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기 전까지는 늘 빚 독촉에 시달리며 삶의 터젼을 옮겨다녔고, 여성편력도 심해 결혼을 하고도 이런 저런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임자 있는 유부녀를 빼앗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 사귀는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바그너는 늘 자신이 가는 곳마다 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바그너는 그의 불안정한 재정상태와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부적인 작가로써의 재능과 기존의 온음계적 음악체계를 타파하는 혁신적인 음악가로써의 감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무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재정 상황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꺾는 초기 바그너의 모습과 후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내려놓겠다는 발언을 했던 점을 보아 바그너는 상당히 기회주의적이고 이득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그너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유대인을 향한 생각이 내가 기대하던바와 상당히 달랐다는 점이다. 바그너는 분명히 반유대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맞지만 그의 강조하는 바는 나치가 주장하였던 독일인의 우월성과 유대인의 열등성의 비교가 달랐다. 바그너는 독일 민족주의에 심취했던 사람이었고, 독일이 하나의 정신과 국가로 뭉치기를 바랬던 사람이었다. 그런 바그너에게 몇백년간 독일에 살면서도 종교, 문화, 외형까지도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존재는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왔고, 바그너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유대인들이 그들 고유의 것들을 버려야만 독일과 조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물론 바그너의 유대인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상을 나는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외국인이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를 배워야한다고 말하는 우리들이 과연 바그너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바그너 전기를 읽으면서 이유는 모르게 안익태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1930년대에 독일에서 친일행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 한동안 애국가와 관련해서 시끌벅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일부 정당에서는 위의 이유를 들어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기도 했었다. 물론 안익태가 자신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친일의 길을 들어섰지만, 그가 친일 행적을 하기 한참 전에 애국가 작곡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곡을 친일파가 만든 곡이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만약 음악가가 직접적으로 그릇된 메시지를 담아 작곡한 음악이 아니라면 그 음악가의 행적에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그의 음악을 순수한 음악으로만 받아드릴 수 있을까?
2018년 8월 31일 이스라엘 음악 전문 방송에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중 4부 신들의 황혼을 방송되었고 2일 뒤 돌연 방송국에서 성명을 내고 사과하였다. 해당방송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사과 성명이 나가고 이스라엘 내 바그너 옹호자들은 방송국을 비난하며 나섰다. 바그너의 음악을 싫어하는 생존자 많큼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생존자도 많다는 이유이다. 이렇듯 바그너의 음악은 그가 죽은지 140년이 다되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혹자는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평가를 받아야한다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측은 그릇된 사상을 가진 사람의 창작물들은 역사의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한다 말한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아르헨티나의 유대계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러한 글을 남겼다.
“Imagine a great beautiful silk tapestry of infinite color and complexity that has been stained indelibly.
It is beautiful tapestry of miraculous workmanship and gorgeous color and silken texture, but the stain is very real.”
(형형색색의 굉장히 아름다운 실크 태피스트리와 그 위에 묻은 돌이킬수 없는 얼룩을 상상해보라.
태피스트리는 분명 놀라운 걸작이고 아름다운 색과 실크의 질감을 가졌다. 하지만 얼룩 또한 진짜다)
- Daniel Barenboim -
- 이전글리허설 – 엘리너 캐턴 19.01.30
- 다음글미술관에 간 화학자 19.01.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