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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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와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다. 송년 분위기가 나는 12월의 어느 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 파스텔 톤 편한 색감의 니트를 입고 벽난로가 있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그린다. 출퇴근 시간이 겹쳐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만나는 이웃집 학생에게 이야기를 하는듯한 편한 말투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사물의 따뜻한 면을 잘 살피는 이런 사람은 나에게서도 좋은 면만 끄집어내어 말을 해줄 것 같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중략)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中
사람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이야기만 보고 싶은 걸까. 이 짧은 이야기가 뇌리에 박혔다. 공대생에 맞추어서 생각을 해볼까. 반응이 일어나려면, 에너지를 넣어줄 수도 에너지 장벽을 낮출 수도 있다. 반응이 항상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애 초반의 열기로 에너지 주입이 어렵지 않은 시기는 상관없다. 장벽이 장벽 같아 보이지 않을 테니. 결혼을 하고 오랜 기간 동안 초기의 열기가 유지될 수는 없다. 호르몬 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연애 초반의 상대를 향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을 더더욱 하려기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차피 그 시절엔 본능적으로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맞지 않는 구석을 잘 제거해내면 장벽은 낮아진다. 권태기가 올만한 오래된 커플도 부부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apology’는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얽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가 사과인 셈이다. 사과의 사謝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과過는 지난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중략)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있는 듯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진짜 사과는 아프다 中
유치하지만 결혼 전 나와 아내는 우리끼리 꼭 지켜야 할 5계명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이다. 예를 들어 ‘헤어지자는 말’ 혹은 ‘평소엔 생각하지도 못할 만한 행동이지만 화가 치밀어 올라 정상적인 판단이 서지 않을 때야 비로소 할 만한 행동’들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고, 아니 그런 행동의 횟수를 차차 줄여나갔고 나는 인생에서 헤어짐을 경험할 일이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로 한 배경은 이렇다. 우린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어차피 다시 화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둘 중 한명은 사과를 하는 과정을 겪어야한다. 사과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 것인지 사과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일반적으로 사과를 하는 입장이 나이기에 나는 나를 스스로 배려한 문장을 우리 서로의 계명으로 삼았다. 어찌 보면 이기적인 배려다. 사과는 용기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더 넓은 아량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주는 쪽도 용기를 가진 자다. 단지 먼저 사과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
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른다. 시간은 특히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부모 얼굴에 깊은 주름을 보태고 부모의 머리카락에 흰 눈을 뿌리는 주범은 세월이다. (중략)
특히 말기 암 환자가 돌봄을 받는 호스피스 병동에선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당연한 일이다. 울기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 나가기 마련이니까.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中
흔히들 세월 가는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한다. 아마 나이가 들수록 삶이 단조로워지며 루틴이 생겨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쳇바퀴 도는 세상을 살아가며 잠시 고개를 들어보면 시간이 꽤나 많이 흘러있다. 가까운 사람이 환자로 있는 요양원이나 암 병동을 가보았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두 살 많은 누나와 그 어머니, 아내의 이모님, 외할아버지, 사랑하는 친할머니 등 나는 어린 나이에 꽤나 경험이 있다. 갈 때까지는 이런저런 위로의 말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도착한 후 치료의 흔적으로 삭발을 한 모습을 처음 보면 말문이 막힌다. 적막함 속에서 서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한다. 서둘러 입을 떼지 못한다. 내 모든 감정을 응축시킨 한 마디를 하려고 부단히 머리를 굴린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우리는 유형의 존재보다 부재의 존재에서 보다 커다란 마음의 흔들림을 느낀다.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미 부재하기에 눈물만 거세지며 후회가 가속된다. 밥상머리에 같이 앉는 부모, 자녀, 배우자에게 조금 더 따듯한 오늘을 보내고 싶다. 그들이 부재하기 전에.
좌뇌형 인간은 이성적, 우뇌형 인간은 감성적이라고 한다. 좌뇌가 우뇌를 잡아먹어, 우뇌가 잘려나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마침 감성을 돋우는 캐롤과 불빛이 거리에 아직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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