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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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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651회 작성일 19-02-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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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의 정의론 - 황경식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평등과, 공정, 정의는 인간 사회가 굴러가는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다. 지극히 기초적인 개념이었지만,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연설했던 이 말에 모두가 공감하였다. 지난 시간동안 사회가 평등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며, 정의롭지도 않았다는 반증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9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부의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여기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 할 온갖 부조리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누구의 말 때문에, 6공화국 최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국민적 분노가 치솟게 되었고,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학종-수시 전형에 대한 비판과 냉소가 여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공정함과 정의라는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 대한 국민적 회의감이었고, 대통령은 불공정을 해소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다짐하였다. 그렇다면 공정함은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이며, 평등함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기여한 바에 따라서 분배를 실현하는 것이다. A가 7의 일을 하고 7의 몫을 가지고, B는 3의 일을 하고서 3의 몫을 가지는 것이다. 언뜻 살펴보면 대단히 합리적인 분배방식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는 생각보다 대단히 복잡해서 공정한 분배를 하기 위한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B가 선천적으로 신체적 장애가 있다면? A가 집안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일을 수월하게 처리했다면? 7:3의 결과만을 가지고 분배를 그대로 실행한다고 했을 때, 정의롭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 사회는 이런 예시보다 훨씬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발상을 가진 사상가가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제레미 밴담이 주창한 ‘공리주의’ 개념이다. 최대한 많은 다수가 행복하게 하는 것이 선한 행동이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하여 소수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이를 오용하여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가 희생한다는 것은 정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정의롭고 옳은 일이지만, 그저 공동체만을 위하여 개인의 희생을 전제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상을 극단적으로 발현한 예시가 나치를 비롯한 전체주의 사상이다. 맹목적인 공동선의 추구는 사회적 약자의 도태를 만들어내고, 양극화를 심화시켜 결국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의 정의가 중요한 것이다.

 

“같은 수준의 재능과 능력, 그것을 발휘할 같은 의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그들의 최초의 지위와 관계없이 같은 정도의 성공과 전망을 가져야 한다.” - 존 롤스

 

문제는 선천적 지위에 상관없이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안정망이 견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인 sky캐슬을 보자. 명문대학을 보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와 입시 코디네이터 그리고 학생 당사자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드라마이다. 명문대학도 결국 부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학벌의 대물림으로 사회적 역동성이라 할 수 있는 계층의 이동이 막혀, 계급의 고착화가 일어난다. 이를 완화하겠다고 정시 축소와 수시-학종을 확대했지만, 정시보다 더 불공정하고 금수저를 위한 전형이라는 오명을 쓴채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평등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입시 제도를 손질했지만, 결국 사회적인 합의도 이뤄지지 못한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불평등한 시작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공허한 결과론적인 평등이나 어설픈 평등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사회의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존 롤스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대원칙을 제시하였다.

 

1. 평등한 자유의 원칙 :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2. 차등의 원칙과 기회균등의 원칙 :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즉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고,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권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펼친 정책들을 살펴보면, 두가지 원칙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평등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회 균등의 원칙을 무시한 사례부터 (입시 제도로 대표되는 인재 선발제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겠다고 차등의 원칙을 무시한 사례까지 (과거 10년 동안 복지정책) 너무나도 많아서 나열하기 힘들 지경이다. 물론 원칙들을 준수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을 알고 있다. 선한 제도하고 할지라도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로 밀어 붙이는 것은 독선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언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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