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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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던 중,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시절에서까지 시험기간만 되면 항상 심심치 않게 들리던 말이 있다. ‘이 과목 평균은 몇이래?’ ‘이번 시험 전체 평균은 어느정도나 된데?’ ‘너는 평균 넘었어?’ 등 평소에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는 평균이라는 단어는 성취도를 평가하는 기간인 시험기간만 되면 여기저기에서 범람한다. 시험기간 뿐만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 속할때 많은 사람들이 ‘제발 평균이상은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하며, 혹여나 자기가 생각하는 집단의 수준에 비해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거나, 평균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깊은 좌절감에 빠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엄청난 인기를 끌며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 은 이러한 어긋난 비교와 경쟁의 결과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자녀들을 인간 계급의 피라미드의 높은 곳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는 ‘스카이 캐슬’이라 명명된 주거 단지에 살고있는 상류층 부모들의 왜곡된 사랑 속에서, 자녀들은 점차 자아를 잃어간 채 경쟁만이 남겨진 곳에서 시들어 가고,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힘든 것들이 다 해결 될 줄 알았던 가정들은 조금씩 파괴되어 간다.
이렇게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는 행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서 중 하나인 성경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듯이 인류 역사에서 꽤나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의 집단이 아닌 광범위한 범위에서 정량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서로를 비교하고, 또 그러한 수치가 남들에게 비교당하기 쉬운 잣대로 사용된 것은 아마 평균이라는 용어가 사회의 개개인관에 스며들기 시작한 이후일 것이다.
‘평균법’이라는 방법은 19세기 초 천문학자들은 천제의 속도를 측정할 때 사용한 방법이었다. 개별 측정값을 취합해 하나의 ‘평균적 측정값’을 산출해내는 이러한 방법을 옹호자들은 해당 측정값에 대해 그 어떤 단독의 관찰보다 더 정확히 산출된 참값이라고 평했다. 이 평균법을 사람들에게 응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케틀레라는 과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평균을 해석하며 개개인의 측정데이터는 오류에 해당하고 평균적 인간이 참 인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위대한 인간은 자신의 속한 공간과 시대에서 평균적 인간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라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케틀레의 사상은 무한대로 보이는 다양한 인간의 유형들을 ‘A형 성격’ ‘리더형’ 등으로 규정지으며 그룹의 평균적인 특성 - 즉 유형을 알면 개인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은 당연시 되어 버린 이러한 사상은 수 세대에 걸쳐 부모가 자녀가 평균 기준에 따라 성장하지 못할까봐 초조하게 만들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진 것이 평균에서 너무 크게 이탈할 때면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나 직원들에게 똑같은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케틀레의 사상보다 더욱 밀접하게 우리의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20세기 초반 골턴에 의해서 제시된 계급이론이다. 그는 케틀레의 평균이론을 받아들였지만, 그 개념을 확장하여 인간을 우월한 이들, 저능한 이들, 그리고 평범한 이들로 유형이 각각 분류된다고 믿고 그들간의 계층을 나누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또한 우월한 계층은 거의 모든 면에서 열등한 계층의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정의내려버리기 때문에, 이 사상을 받아들인 우리는 누구나 가능한 한 평균을 훌쩍 뛰어 넘으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했듯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온 길 역시도 이러한 평균의 잣대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단지 조금 일찍 공부라는 단편적인 부분을 주변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잘 했다는 이유로, 낙후된 지역에 살았던 나는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주변으로부터 받으면서 살았고, 그로인해 나 역시도 내 스스로가 마치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우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사로 잡혔었었다. 하지만 단지 남들보다 몇 문제 더 푸는 것이 중요했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학창시절이 지나간 후에, 그것은 정말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보다 성적을 잘 받지못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적어도 수 가지의 측면에서는 나보다 뛰어나거나 배울 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것들은 오히려 살아가는데 문제 몇 개 더 푸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만한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한 분야에서 고작 지금 이 순간에 평균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더 이상 나에게 우월감을 심어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인간에 있어서는 이러한 평균의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사실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밀러는 실험 참가자들의 언어 기억에 관여하는 평균적인 뇌 활동 지도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밀러는 실험도중 주목할만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실험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언어 기억에 관여하는 뇌 부분이 모든 피실험자들에 있어 다른 부분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수십 년 동안 신경과학계 연구에 지침이 돼온 가정은 평균적인 뇌에 대한 가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였다. 이런한 결과들과 발맞추어,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미국의 혁신적인 IT 기업들도 GPA와 출신학교등으로 등급을 매기는 틀에박힌 채용 프로세스를 과감히 탈피하면서 개개인성을 중시하는 채용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람직하게도, 사회는 조금씩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자신의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갈고 닦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도록 변하고 있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스카이 캐슬’은 원래 그곳에 살던 상류층의 부모가 잘못된 방향의 경쟁이 빚어낸 비극들을 인지하는 과정과 새로 입주하게 된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한 가정의 노력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자신들의 삐뚫어진 기대를 결국 내려놓고, 자녀들은 환경과 부모에게 끌려가 우월한 계층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기로 결심하게 된다. 비록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결말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매 회 가파른 시청율 상승을 보이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삐뚫어진 경쟁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시나리오로 구성된 가상의 이야기가 조금은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스카이 캐슬’의 결말처럼 그 어떤 나라보다 더 경쟁적인 우리나라도, 천천히라도 조금씩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서로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로 변해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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