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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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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6,785회 작성일 19-01-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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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조던 B.피터슨


    “지금 서구 사회에서 조던 피터슨보다 영향력 있는 학자는 없다” 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처음 안 것은 유투브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조던 피터슨 교수가 페미니즘 관련된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면서 였다 (Link). 2018년 1월 영국의 Channel 4에서 앵커 캐시 뉴먼과 남녀 임금격차에 대한 토론을 하는 영상인데, 이후에야 알았지만 서구 사회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페미니즘이 매우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와중에 그가 인터뷰에서 보여준 가치관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다. 여하튼 그의 인터뷰와 유투브 강연 영상을 찾아보며 그가 가진 철학에 관심이 생겼고, 운 좋게도 그가 집필한 저서인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최근 국내에 발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꽤 즐거웠다. 추상적인 관념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고자 하는 여타 자기계발서들과는 달리,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성찰해온 철학을 최대한 객관화 시켜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기준에서 좋은 책이라 함은 ‘객관적인 사실을 흥미롭게 전달’ 하거나 ‘사색을 하게끔’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어느 정도의 전자와 높은 만족도의 후자 기준을 달성한 책이다. 가령 1장에서는 계급사회가 인간의 사회 문화적 현상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랍스터의 신경 작용을 예로 든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사회 전체적으로 서열 구조는 보편적인 현상인데, 랍스터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서열이 존재한다. 영역 싸움에서 진 랍스터는 패배자의 신분이 되어 약자의 행동 양식들을 가지게 되는데, 공격성이 약화되고 조그마한 자극에도 반응의 전도가 크고 빨라지는 등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랍스터의 신경계의 작용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세로토닌과 옥토파민 농도에 따라 상위 랍스터와 하위 랍스터의 행동양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패배자 신분의 랍스터에 세로토닌을 투여하면 다시 공격적인 성향이 증가하고 적극적으로 영토 싸움에 나서려고 하는 반면, 옥토파민의 농도를 높이면 반대로 공격성향이 낮아지고 마치 패배자 랍스터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랍스터의 출현은 3억년 이상 전으로 공룡보다도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저자는 인간이 출현하기도 훨씬 전부터 이미 자연의 섭리에 서열 구조가 자리잡고 있었고 적응과 진화에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랍스터의 서열이 어떻게 정해지는 지 보다는, 계급 사회의 영향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마치 승자 랍스터 처럼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게 좋은 영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러한 결론보다는 결론을 뒷받침 하는 방식이 더욱 흥미로운 장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총 12개의 법칙  (각각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들 중 가장 인상깊고 깊게 생각을 한 장은 7장 -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인간이 희생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이유와 숭고한 의미를 지닌 길을 가야하는 이유는 인간의 일생에 깔려있는 혼돈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피터슨 교수는 그것에 선과 악의 개념을 결부시켜 인간 사회 전체의 개념에서 그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그동안 개인적인 가치 실현의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고민한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태초의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눈을 떴을 때 깨달은 죽음과 노동의 필연성으로 시작하여,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고 모든 인간의 나약함과 함께 두려움, 분노, 원망, 원한, 그리고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다는 행위는 자기 희생의 표현 방식이고 그러한 희생을 통해 인간 모두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행위이다. 그리스도는 그 희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시각을 빌리지 않고서도 꽤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심리학 개념인 ‘만족 지연’을 이용하여 이를 설명하는데, 초기 수렵채집 사회에서 맘모스를 사냥하는 인간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맘모스는 매우 몸집이 크기에 한번 잡으면 부족민 여러 명이 배를 채우고도 어느정도 남는다. 남은 고기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맘모스를 잡았을 때 자신에게도 고기를 나눠주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사냥 후 고기를 나눠주는 행위의 효과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된다. 지금 잡은 맘모스 고기를 남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곧 나중에 내가 맘모스를 잡지 못했을 때 남들이 잡은 고기를 나눠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눈앞에 이익을 포기하고 미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이익을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던 과거의 일들도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사냥 후 잡은 고기 중 가장 소중한 부위를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그만큼 큰 희생을 하였으므로 미래에 더욱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행위이다. 현대는 이러한 일차적인 욕구들 보다는 보다 다차원적인 욕구에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피터슨 교수가 이야기하듯,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커다란 희생이 뒤따르며, 이는 눈앞의 쾌락과 편의를 선택하는 편의주의에서 벗어나 높은 목표를 지향하는 삶을 사는 것일 수 있다. 주의하고, 집중하고, 고칠수 있는 것을 고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나의 잔혹한 심성을 항상 살피라고 한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며,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수많은 죄를 범하였음에도 하늘의 영광을 바라지 말라고 한다. 결국 세상이 사악해지는데 한 몫 거든 것 일수도 있기에.  ‘희생’이라는 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깊은 공감을 일으킬 수도, 혹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의 결과와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짊어져야만 한다는 진리에 기반할 때, 위와 같은 생각을 하나의 등대로 삼아 무엇이 더 올바른 선택인지 성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이유로든 전체적인 이유로든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희생이 따를 것이고 그럼에도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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