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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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서울 은평구에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의 중고 서적 판매점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책방의 주인은 원래 프로그래머였는데 서버 컴퓨터를 다루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내내 일하거나 일하기 위한 준비작업 시간으로 삶을 살던 그는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통증을 동반한 급성 디스크로 진단 받은 병원에서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환자분 지금 몸 상태로 보자면 이만한 게 다행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하니 꽤나 상태가 심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을 적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어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출근하여 일하는 자신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게 사는 건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아야 할까?”
단지 계기가 이것만은 아니지만, 저자는 결정적으로 건강을 잃게 되었을 때 지금의 생활을 진지한 눈길로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이반 일리치’라는 학자를 알게 되었고, 그가 쓴 책들을 통해서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앞서는 ‘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반 일리치는 일하고 돈 버는 것에 앞서서 그와 균형을 맞추는 생활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균형을 맞춘다는 말은 각자 자신의 생활의 건강한 리듬을 찾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좋아 보이는 말들은 널려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리는 없고, 저자에게 헌책방은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모종의 검증 장치였다. 이 책은 그런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엮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헌책방과 전문가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 저자의 삶과 생활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저자의 책방에서는 매달 두 번씩 금요일 밤에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전영화를 보거나 LP 감상회를 하는 등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인디밴드를 초청해서 라이브 공연을 하기로 한 문제의 날 어느 방송사로부터 헌책방에서 하고 있는 문화 행사를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온다. 공중파 뉴스에 영상이 나가면 헌책방은 더 많이 알려질 것이고 손님도 늘 것이 당연하기에 뉴스 카메라와 인터뷰 촬영이 부담스러움에도 저자는 자신과 타협한다. 공연 시작까지만 해도 큰 문제없이 공연이 진행되었다. 두 곡 정도 연주를 마치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음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든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연주자들의 모습을 근접 촬영하는가 싶더니 이내 LED 조명을 환하게 비추고 관객을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사실 우리가 TV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객의 모습을 보게 되지만, 실제 촬영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이들은 공연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저자는 무대로 올라가 이들을 저지하고 공연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촬영도 해야겠지만 관객이 좋은 공연을 편안하게 보는 게 오늘 행사의 목적인데 저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촬영팀에서 돌아온 대답은 이렇게 촬영을 해야 방송으로 나갔을 때 결과물이 좋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라이브 연주를 지켜보는 관객은 십수명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것이 방송으로 나가면 수백 만 명이 헌책방 문화행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문가였다. 저자는 이날 나름대로 항의를 했지만 역시 전문가들의 논리와 말솜씨에 주눅이 들었고 전문가가 아닌 존재는 지우개로 문질러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이러한 불행은 우리들의 삶을 이런 저런 전문가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가끔 저자가 책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받고 본인이 아는 사람 중 한 분을 소개하겠다고 하면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이름이 잘 알려진 전문가들 중에서도 실은 껍데기뿐인 사람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 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 노력을 기울인다고. 그러나 전문가는 다름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며, 적어도 자기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전문가는 우리들 속에 이미 있는 것이라고. 저자의 전문가에 대한 불신과 삶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방법들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방향키를 자신이 쥐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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