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귀신나방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지원
댓글 0건 조회 5,966회 작성일 19-01-04 19:41

본문

귀신나방 – 장용민

 

 섬뜩한 제목과 표지, 멀쩡한 청년을 살해하며 시작되는 내용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간결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이 소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귀신 나방’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히틀러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귀신 나방’은 끔찍한 몰골과 지저분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특정 시기에 일부러 죽음을 맞아 이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한다.

 

 ‘오토 바우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2년간 지옥을 경험하고, 가족을 잃은 뒤, 홀로 살아남았다. 그는 열일곱 소년인 ‘애덤 스펜서’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히틀러를 죽였다고 믿는다. 이후 사형 선고를 받은 바우만은 사건의 전말에 대해 털어놓는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젊은 사람들에게 이식하여 마치 ‘귀신 나방’의 일생처럼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는 소설의 설정을 통해 히틀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된 바우만은 청년의 모습을 한 히틀러를 찾아내어 제거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유대인 학살에 대한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일제 식민지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과 같은 큰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그런 비극은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음모론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존이라는 터무니없는 설정은 진짜 이야기를 감춰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히틀러에 대한 스토리텔링에는 자본주의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린츠’라는 한 시골 마을에서 소년의 몸을 한 히틀러의 ‘자본주의 실험’이다. 평화로운 마을에 석유가 있다는 자본의 허상을 심어, 편을 가르고, 서로 죽이도록 만드는 장면이 있다. 한 사람의 말로 6개월 만에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내용을 통해 자본주의의 무서운 면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에서 사는 우리에게 닥칠법한 일을 통해 자본에 대한 욕심이 우리를 공포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통해 자본주의에서의 인간관계와 자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나 가족일수록 금전 관계는 깔끔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런 가르침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빚을 진다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했고, 이는 돈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간이나 물건을 빌리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보답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중요한 것은 나의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경우이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내게 지는 신세를 중요하게 여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호의를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이다.

 

 린츠의 사람들은 이웃집의 바닥에 묻혀있는 석유를 탐하게 되면서 서로 대립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재산을 본인이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재산을 쉽게 여겨, 나눔을 강요한 것이다. 물론 내 시간과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 인간관계가 먼저 이루어진 상태라면 강요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런 관계일지라도 상대방이 나누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것을 쉬이여기지 않았다면 절도나 사기와 같은 범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면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았을 사건들이 많이 있다.

 

 히틀러를 스토리 전개의 핵심 인물로 제시하면서, 그는 원하는 사회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자본주의를 문제삼으며 사람들의 탐욕을 이용한다. 그가 개입하기 전에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을 것이다. 탐욕이라는 마음이 자리 잡기 전의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여기고, 당연하게 여길수록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서서히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정중히 요청하고, 도움에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면 린츠의 사람들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