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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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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435회 작성일 19-01-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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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한 때 ‘착한아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착한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와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복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하는 말로 (위키피디아), 타인으로부터의 자신에 대한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한 것이다. 어렸을 때, 아니 성인이 되어서까지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은 적이 꽤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아니라 원래 착한거야’ 라고 반박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항상 찝찝하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사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혹은 조금 더 인기를 끌기 위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 만들어진 말이나 모면하기 위해 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소설 속 1984년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세 개의 초강대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 하나인 ‘오세아니아’는 ‘빅브라더’라는 절대적인 권력자가 존재하며, 이를 추종하는 당원들과 ‘프롤’이라고 하는 하층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완성된 모습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으로도 여겨지지 않는 ‘프롤’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없애고 과거를 끊임없이 위조하고 세뇌함으로써, 무지의 늪에 빠져 위로의 권위에 대항할 목적의식조차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 내며, 체제유지에 필요한 일들을 하는 하부 당원들 역시 극단적인 감시와 끊임없는 세뇌, 그리고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증발’을 통해 열심과 껍데기만 남아있는 존재로 만들어낸다. 모든 당원들의 집을 포함한 나라의 곳곳에는 ‘텔레스코프’ 라고 하는 감시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러한 텔레스코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과 대화가 실시간으로 감시되어진다.



오세아니아의 외부 당원인 ‘윈스턴 스미스’는 모든 과거의 기록들을 조작하고, 기록의 조작을 통해 모순 없이 현재를 당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진리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진리부에서는 당이 어떤 발표를 할 때마다, 그것에 맞게 과거의 기록들을 모두 찾아내 고치고, 발표하는 내용들이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과거를 ‘조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들이 대중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지 지금의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철저한 무지와 선동으로 그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에만 기쁨과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된 프롤들과 ‘이중사고’ 의 훈련을 받아온 당원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받아들인 것처럼 행동한다. 여기서의 ‘이중사고’ 란 한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개의 서로 모순된 신념을 동시에 지니며 두 개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세아니아의 경우에는 당에서 발표하는 것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당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이중사고’라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윈스턴 스미스’의 내면에는 조금씩 의심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진실이라는 것이 어쩌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당에서 모두에게 내보내는 정보들이 사실을 거짓을 위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가 진실을 위조하여 현실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의심해 본 적 없는 현실의 진실 여부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이 허용한 것 이외에는 생각에나 쾌락을 느끼는 것 마저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그는 그의 집 구조상 텔레스코프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프롤들의 암시장에서 몰래 구한 일기장에 자신의 생각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일기장에 써 내려가기 시작한 의심들은 그에게 확신이 되었고, 그 확신은 현재의 체재가 무너져야 한다는 신념이 되었다.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증발’되어 버릴 수 있는 오세아니아에서, 윈스턴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당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숨죽이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윈스턴은 자신과 비슷하게 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런 것들이 신물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감정과 쾌락이라는 감정을 동반한 성행위는 복종과 승리의 감정만 존속시키기를 원하는 당의 입장에서는 없어져야 할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은신처를 찾아 도피하며 사랑을 나눈다. 줄리아와의 사랑을 통해 당에서 끊임없이 세뇌시킨 복종과 승리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듣게 된 윈스턴은 자신과 줄리아에게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속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들이 행동, 말, 생각까지 모든 것을 상세하게 밝혀낼 수는 잇겠지만, 자기 자신조차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는 신비한 속마음만은 쉽사리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얼마 안 되는 밀애는 사랑을 나누고 잠을 취하던 그들의 아지트가 사상경찰들에게 발각되어 끝이 난다. 윈스턴은 법과 질서를 관장하는 애정부 건물에 끌려 들어가 그의 사상을 검증 당하고, 당에 합당한 인물로 만들어지는 길고 끔찍한 고문과 교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간에 있었던 모든 사실과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게 될 모든 반역과 모함의 사실들을 자백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거의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그가 본능적으로 극도로 두려워하던 것과 마주하였을 때, 그가 줄리아를 사랑한다는 속마음마저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다.


‘줄리아한테! 줄리아한테 하십시오! 나 말고 줄리아!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얼굴을 잡아 뜯고 뼛속까지 뜯어먹게 하십시오! 나 말고 줄리아한테! 나는 안 돼!’



조지 오웰의 1984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불린다. 지상 낙원을 그리는 유토피아와는 달리, 최악의 미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라고 생각해 봤을 때 그릴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이 바로 디스토피아다. 그에게 1984 속 오세아니아의 모습은 만들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회였다. 모든 행동이 감시되고, 독재자에 의해 통제되며,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사랑이나 우정 따위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불필요한 감정이 모두 제거된, 그야말로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제외한 인간적인 면들이 모두 제거되어버린 사회. 오세아니아는 그런 사회였다. 윈스턴과 같은 몇몇의 의심을 품은 지식인들이 있다고 하면, 결국에는 견딜 수 없는 고문을 통해 체제에 동화시킨 후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환경에서 개개인의 말과 행동은, 내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원하는 대로 획일화 되어 버리고, 결국 자아는 껍데기만 남은 채 지워져 버린다.



1984의 소설 끝에 서술된 한 평론가의 평론에 지적되어 있듯이 이러한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소설과는 반대로 모두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조금 얼굴을 달리한 채로 비춰진다. 식민지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고전적인 제국주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금융 자본 또는 산업자본으로 무장한 신제국주의라고 부르는 또 다른 제국주의가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오히려 과도하게 자유로운 미디어의 확장으로 인해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뉴스들과 정보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흥미를 끌기 위해, 그리고 인기를 얻기 위해 실제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음모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특정 인물이나 당의 추종자를 만들거나 반대로 실체가 없는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조금 더 개별적인 개인의 입장으로 들어가보면,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혹은 지위나 인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의 입맛대로 끌려가는 삶을 살다가 지쳐 결국 다시 껍데기만 남아 버리기도 한다.



1984년 오세아니아가 그들의 지배 체계를 철저한 무지와 세뇌로 이루어 냈 듯이,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상황의 바람직한 해결책은 결국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왜곡되지 않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인간의 모습들에서 배울 수 있는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에 대한 교육, 다른 사람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교육, 정치와 사회 체제에 대한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다양한 측면에서의 교육들이 풍부하고 적절하게 이루어져 바람직한 개개인의 내면이 형성되었을 때, 그 내면에서부터 비롯된 외부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생각과 행동들은 세상이 조금 어지럽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그리고 그들이 속한 집단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이 된다. 책을 읽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착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 만은 아니라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수십년 간의 반복된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문헌으로부터의 교육으로 인해 나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기분 좋게 해 주는 것이 속한 집단 뿐 아니라 나 역시 행복하게 해 준 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은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꾸준한 배움으로 인해 조금 더 내면이 다져지고 나면, 껍데기를 의식하지 않고 진실한 내면이 이끄는 대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정말 ‘착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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