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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런 Born to run –크리스토퍼 맥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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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6,048회 작성일 18-1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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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런 Born to run –크리스토퍼 맥두걸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이 명제는 참인가? 참과 거짓을 논하기 전 먼저 코웃음이 나올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인간은 뛰어난 뇌를 가졌고 이를 이용하여 과학, 기술, 예술, 문학 등 문화를 형성하는 고등한 동물이기에 달리기와 같은 인체 본연의 것을 목적으로 둔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1. 흔히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조상이라 생각하지만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종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뼈와 근육으로 보아 육체적으로 더 강하고, 뇌의 크기로 보아 더 똑똑했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나타나기 20만 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은 그곳에 있었으나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후 1만 년 만에 해빙기를 맞아 네안데르탈인은 모두 사라졌다.


2. 짧고 곧은 발가락, 아킬레스건, 단단한 대둔근, 목덜미 인대. 인간에게 있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분들이다. 목덜미 인대는 인간과 95% 이상의 유전자가 같은 침팬지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다. 돼지에게도 없지만, 말, 개, 치타에게 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받는 연구를 위해 노벨 재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연 최대의 선물인 진화이고, 그들은 진화의 힘을 이용한 연구를 했다. 여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인류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생존을 위한 진화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을 거쳐 인간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런데 더 강하고, 더 똑똑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비교적 작고, 약한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오래 전 해빙기를 맞아 환경이 바뀌었으며 이에 따른 동물의 종류도 바뀌었다. 넓은 초원이 나타났으며 날쌘 영양의 수가 급증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강하고 크기가 컸으며, 주로 큰 동물과 힘 대결을 통해 음식물을 구했다. 그러나 날쌘 동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네안데르탈인은 몸에 열이 쌓였고, 근육의 무게로 쉽게 지쳤으며 따라가지 못했다. 해빙기를 맞은 새로운 시대는 달리기에 용이한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달리기에 적합한 부분들을 갖고 있다. 한 방향으로 자란 짧고 곧은 발가락, 종아리와 발 사이의 스프링 역할로 반발력을 더하는 아킬레스건, 걸을 땐 부드럽고 말랑하지만 뛰게 되면 단단해지는 대둔근, 뛸 때 머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여 자세를 정립해주는 목덜미 인대. 이것들은 호모 사피엔스를 달리는 사람들로 적합하게 만들어주었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이제는 조금은 그럴듯해 보인다. 어쩌면 ‘예전의’ 인간은 달리기를 주로 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기는 인간의 DNA 속 깊은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현대 달리기의 꽃은 100m 달리기와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다. 단거리와 장거리, 어느 것이 인간에게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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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와 물에서 모두 인간은 동물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치타와 돗새치는 각자의 서식지에서 100m를 3초 정도에 주파한다.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근대 육상 종목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과 동물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달리기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인간보다 오랫동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동물은 없다. 무수한 땀샘이 온몸에 퍼져있어 중간 중간 인간이 영양소만 섭취할 수 있다면, 달리는 동안 호흡과 온도 조절이 동시에 용이하기에 신체 구조상 대부분의 동물들에 비해 오래달리기 능력이 탁월하다. 온몸이 털로 덥혀있으며 호흡을 통해서만 온도조절을 하는 동물들은, 조금만 오래달려도 체온이 급격히 상승해 죽음에 이른다. 실제로 무기가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인간의 사냥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물을 따라가는 방법이었다.


3. 미국에서 장거리 달리기가 크게 유행한 적이 세 번 있다. 세 번 모두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였다. 첫 번째 장거리 달리기 붐은 대공황 시기에 일어났다. 당시 그레이트 아메리칸 풋레이스에서 2백 명이 넘는 주자들이 하루에 40마일(64킬로미터)을 달리면서 달리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후 잠잠해졌다가 1970년대 초 달리기 붐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냉전, 인종 폭동, 대통령의 범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세 지도자의 피살 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세 번째 장거리 달리기 붐은 9.11 테러 다음 해에 일어났다. 트레일 러닝은 갑자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야외 스포츠가 되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잇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 속에 어떤 방아쇠가 있어서 포식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가장 우선적으로 최고의 생존 기술이 작동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달리기보다 손쉬운 것은 없다. 장비와 욕구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냥 뛰어나가서 달리면 된다.


4. ‘연민’의 연관성은 탐구할수록 흥미를 자아냈다. 달리기에 헌신한 사람들의 전당에 에이브러햄 링컨(달리기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소년은 없었다)과 넬슨 만델라(뛰어난 칼리지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감옥에서도 매일 제자리에서 10킬로미터 이상을 뛰었다)가 들어 있는 것은 그냥 우연일까? 삶에 대한 사랑은 그의 모든 행동 속에서 빛났다.


 육체적으로 인간이 달리기에 적합하다는 것은 이쯤하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고등 사고를 하는 두뇌를 가진 동물이기에 정신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달리기는 인간의 정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언젠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스트레스를 극심히 받은 인물이 빗속을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편집을 통해 함축된 시간 안에 인물의 심리를 표현해야하는 극에서 인물의 심리는 대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폭에서 은유적으로 그려진다. 달리기를 취미로 하건, 하지 않건 사람들은 그 달리기의 의미를 알아챈다. 정신적 압박을 피해보려는 필사적인 방안 중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경제 불황 시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는 것보다 더욱 연관관계가 크다. 달리기는 기분의 항상성을 맞춰준다고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항우울제를,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적정량의 우울제를 선물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달리기를 오래 한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은 당연하며,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


 폭력, 비만, 질병, 우울, 끝없는 욕망 등 인간의 모든 문제는 ‘달리는 사람들’로 살기를 멈추면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두뇌 사용 시간이 육체 사용 시간을 넘어섰고, 심지어 현대인들은 일주일에 30분 이상 걷기를 한번도 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병이 들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걷기 시작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달리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몸을 스스로 조소하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돌아본다. 재밌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나에게 다가온 일이 아니기에 ‘나중에 운동하면 되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들은 오늘도 책상에 앉아 있다가 침대로 옮겨간다. 이쯤 되면 인간은 고등 동물이 아니다.


 이 책은 사실 인간이 달리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서술한 책은 아니다. 달리는 부족인 타라우마라 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취재한 기자 겸 작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소설처럼 써 내려간 책이다. “땅이 갈라진 틈새가 너무나 광대해서 반대쪽 끝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주껍질에 설형문자로 된 지도가 새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보았다.”와 같은 아름다운 표현들은 두꺼운 책을 읽으며 잠시 멀어진 집중력을 되찾아오는 데에 큰 역할을 할 만큼 아름다운 표현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인간의 신비를 지적인 부분 외적인 것에서 찾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2009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서 다른 이들도 추천을 하니 읽음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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