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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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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763회 작성일 18-11-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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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이규섭

과거는 미화되고, 불의는 잊히며, 모순은 외면된다. 인간은, 평범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다.

스티븐스는 긍지 높은 저택 달링턴의 집사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품격있는 저택. 그곳에서 수십 년을 함께 해온 그는 자신의 업과 그 직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남아있는 나날’은 오랜 시간 저택에서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가 새로운 고용주를 맞이한 뒤 처음으로 휴가를 떠나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집사로서 모든 걸 바쳐 살아온 그는 막상 휴가를 받은 뒤에도 무엇을 할지 망설이지만, 과거 저택에서 일하던 켄튼 양의 편지를 받고는 모자란 일손을 보충하기 위해 능력이 출중했던 그녀를 설득하러 떠나게 된다.

세월이 변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집주인이 영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뀐 것뿐 아니라, 각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모이던 저택도 이제는 전처럼 북적이지 않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도 세상이 변하고 나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스티븐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매번 당위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는 계속해서 ‘품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이들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진정한 신사들은 가지고 있는. 결국에는 오랜 세월 집사 일을 하면서 자신이 습득했다고 여기는 그 숭고한 가치를 그는 ‘품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 ‘품위’가 대체 무엇이었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스스로 사명감을 가지고 화려하기보다는 그 업의 본질을 파악하고 완벽히 일을 처리하는 것? 그는 직업정신을 빌미로 그는 마주해야 할 현실에서 계속해서 도망쳤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마저 함께 하지 못한 채 저택의 업무에만 집중했고, 켄튼 양의 호의를 알면서 모르는 척 자신의 마음을 무시했고, 결국 종래에는 자신의 고용주가 나치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것을 인지하고도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서는 말한다. 자신의 고용주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비록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그는 진정한 신사였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다. 켄튼 양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녀를 자꾸만 그의 업무수행 방식에 도전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녀가 그에게 보인 모든 호의. 그는 그것들을 철저히 무시한 채, 그것이 자기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한 것이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집사에 부류에 속한다고 말했다.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본질에 충실하여 본연의 업무를 다하는 것. 호랑이를 잡은 집사의 이야기를 빗대면서 결국은 자신이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하지 않았나. 잠시 자리를 비워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수 없이 찾아온 고용인들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그날 ‘정말 중요했던’(그러나 돌이키면 나치와 평화적 협상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리였던) 저택의 행사를 마무리 짓는 데에만 힘을 썼다. 그날 밤, 그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과 자신이 처리한 업무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가치관은 한 사람의 정체성임과 동시에, 그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과 지식의 데이터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린 삶의 추세선이다. 데이터를 분석할 때, 특히 그 데이터의 양이 경향을 파악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그러하듯, 삶을 돌아볼 때에도 개인의 주관이 반영된다. 우리가 의도한 그래프를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피팅 모델을 선별하는 것이다. 경험이라는 데이터는 삶이라는 집합에 비해 삶의 윤곽을 잡아내기에 턱없이 그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는 한번쯤 이미 그려놓은 추세선을 벗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치관은 결국 미래에 대한 길잡이이기도 하다. 추세에서 멀어지는 데이터를 외면하고 잘못된 깃발을 향해 나아가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어진다.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추가된 데이터를 무시하고 얻은 결과는 결국 어느 순간 모순을 일으킨다. 한 번 모순이 발견되면 결국 그 원인을 고치지 않고서 말을 맞추기가 어렵다. 어디 한군데를 고쳐도 다른 부분에서 자꾸만 모순이 생겨나는 법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에 한번 모순이 생기면, 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개인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부분을 인정하고 수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모순만을 바로잡기 위해 제자리에 멈추어 계속해서 무의미한 합리화를 반복한다. 그렇게 가치관과 현실의 괴리는 점점 벌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은 당신이 잘못되었음을 더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때. 그때가 오면 결국 원치 않아도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보이는 연심을 애써 무시하고, 그래서 애써 다른 이에게 떠나는 여인을 끝내 잡지 못한 사람. 공과 사를 지나칠 정도로 구분하며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조차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 사람. 자신이 존경한 사람이 저지른 과오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 사람. 진지한 태도, 엄숙한 표정, 꼼꼼한 업무처리능력을 가진 마치 집사의 표본과도 같은 그였지만, 단지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 시대의 바람 앞에 홀로 서서 두려움에 경직되었을 뿐인. 비겁한 사람. 그래서 더욱더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너무 보잘것없고, 그런데도 거기에 날아갈 수는 없었던. 그저 그 주류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모든 것을 ‘위대한 집사’ 따위를 운운해가면서 부여잡아보려는 이 멍청한 사람을 두고서, 겉모습만 말쑥한 이 노신사를 두고서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켄튼 양에게 편지를 받은 그는 내심 기대하면서도 불안해했다. 그가 주절대듯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인정해야 하는 필연 앞에서 그런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제는 결혼하여 나이가 지긋해진 켄튼 양을 만나고 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눈 뒤 그는 마음이 후련해진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둘은 결국 그 시절의 호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켄튼 양은 결국 저택업무에 대한 스티븐스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 스티븐스는 그녀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진심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행복을 빌며 자리를 뜬다. 

분명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날 밤, 그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저택에 돌아가면 미국인 고용주에게 제대로 된 농담이란 걸 해보자고 결심을 하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모를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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