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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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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484회 작성일 18-10-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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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저

 



    평균. 그 얼마나 듣기만 해도 안정감이 밀려오는 단어이던가. 특히 우리와 같은 공학도들에게 평균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다. 산포한 수많은 데이터들의 경향을 숫자 하나로 유추할 수 있고 실험이나 연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제시해줄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아마 모두들 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두 아이는 평균 수심 1m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는 서로 다른 두 강으로 뛰어들었다. 한 아이가 들어간 곳은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잊기 충분한, 알맞은 수심의 강이었지만 한 아이는 다시는 그 강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평균의 무서움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넘기며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잘 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아니 이 보다 더 극단적인 평균의 무서움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국가가 제공하는 근대 교육제도의 테두리에 갇힌 어린 학생들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평균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 영, 수, 사, 과에서 각각 100점, 0점, 0점, 0점, 0점을 맞은 학생의 평균은 20점. 학교는 이 학생을 하위 5%의 구제불능 멍청이로 분류한 뒤 정상적인 학업 성취가 불가하다고 판단, 열등반으로 보낸다. 이렇게 미래의 노벨문학상 후보 하나가 인류사회에서 영영 사라진다.

 

    평균의 종말은 미래 사회에 대한 예언이나 트렌드의 예측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 토드 로즈의 소망이자 사명이다. 저자는 이 세계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지배적 방법인 평균의 폐해를 밝히고 그 대안을 제시해 우리가 평균의 허상으로부터 깨어나기를 촉구한다. 저자 역시 어린 시절 공교육 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공부에 흥미를 잃으며 ADHD 증후군 판정까지 받게 되지만 스스로 독자적인 공부법을 찾아내 현재는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오늘날 평균은 한 사람의 능력과 가치, 심지어 성격과 성향마저 대변하는 무소불위의 지표가 되었다. 많은 학교와 기업에서 진행하는 인·적성검사로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습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내향적). ‘당신은 도전적이고 새로운 일을 맡는 걸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외향적). 인·적성검사는 다양한 맥락에서 내놓는 완전히 모순적인 답들을 합산해 평균을 낸다. 만약 합산 점수가 내향적이라는 곳으로 치우쳐져 있다면 나는 어디를 가던, 무슨 일을 하던 내향적일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것이다.

 

    평균으로 설명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다면적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능력과 성향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매우 들쭉날쭉한 것이다. 평균은 이 개성을 꾹꾹 눌러 펴 나와는 어느 한 부분도 닮지 않은 기이한 초상화를 그려준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들이 우리 세계에 이토록 깊숙이 뿌리내린 이유가 뭘까? 그건 천문학계에서 이름을 날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한 과학자의 극적인 피봇(pivot)을 통해 시작됐다.

 

    아돌프 케틀레. 그는 전 세계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시대에 아버지와 같이 뛰어난 천문학자가 되고자 했던 남자였다. 케틀레의 소망은 하루빨리 사회가 안정되어 예전처럼 왕의 후원으로 천문학을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러다 문득 이 혼란한 사회를 설명하는 과학적 방법은 없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시기는 인류 최초로 빅데이터가 쏟아지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케틀레는 이런 통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평균을 도입한다. 어떤 연구 결과나 고뇌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천문학계의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천체의 속도를 재는 과정에서 관측자마다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에 당혹감을 느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각각의 결과에 평균을 냈던 것이다. 그들은 이 평균이 실제 천체의 속도와 가장 가까운 수치라고 믿었기에 인간 또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은 복잡다단한 인간을 정형화시켜 그 본질을 한 눈에 파악하려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과 맞물려 사회 과학계의 주류로 떠오른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러한 사고는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산업시대에 이르러 폭발적인 확산이 이뤄졌다. 훌륭한 CEO라면 누구나 자신의 공정을 표준화했고 이 표준화된 방식을 잘 수행할 수 있는 표준화된 인재를 채용하려 했다. 그리고 이 회사들에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근대의 교육제도였다. 이제 학교가 왜 그렇게 지루했는지 아마 이해가 갈 것이다.

 

    150년 전 말이 끌던 마차는 현재 눈 깜빡할 새 수 십 미터를 달리는 스포츠카가 되었고 통신교환원을 통해 한참을 기다려야 원하는 사람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전화기는 현재 주머니 속 컴퓨터로 진화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학생들은 근대 교육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법 아래 수 십 명의 학생이 한명의 선생님께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있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그런데 물고기가 나무를 타올라가는 능력으로 평가하자면

그 물고기는 평생을 스스로가 바보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Albert Einstein-

 

    생각해보면 사회에 균열을 내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는 건 결국 아웃사이더들의 몫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의 진화 또한 매번 똑같은 형질을 물려주는 DNA가 아니라 돌연변이를 통해 시작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이 정한 훌륭한 사회인의 '평균적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특이성을 발견하고 그 특이성을 갈고 닦아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취해야할 올바른 태도다. 또한 더 이상 학교가 과거를 되짚는 곳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여운 깊게 봤던 ‘슬럼독 밀리네어’라는 영화작품이 떠올랐다. 상담센터에서 차(tea)를 타주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끼니를 겨우 연명 중인 슬럼 출신 청년이 한화 200억 원 가량의 상금이 걸린 퀴즈대회에서 우승했다. 제작진은 그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수사 과정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가 펼쳐진다. 그는 천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어 박학다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인생은 놀랍게도 10개의 문제들의 답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순수했고, 폭동 속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따스했고, 불의를 참지 못해 용감했고 신념을 지키려 대담했다. 그는 절대로 사회가 규정한 정상 범주 내지는 평균 주위의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뚝심있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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