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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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나는 어렸을 적 과학고를 준비하며 자연스레 천문학을 배우게 됐다. 내가 처음 접한 천문학은 모호하고 특별했다. 모호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간 접했던 과학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과학에는 복잡한 수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어린 내가 보기엔 천문학은 비교적 단순했다. 그래서 좋았다. 뭔가 특별하다고 느꼈던 것은 배울수록 감수성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태양은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 은하 안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지 배우다 보면 자연스레 우주 안의 지구, 지구 안의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작은 존재지만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내가 ‘겸손’과 ‘자존’을 삶의 기조로 꼽고있는 것도 아마 어렸을 적 천문 공부를 하다가 싹 튼 것 같다.
겸손은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정신, 자존은 실패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광활한 세상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하고, 나 자신에 대해선 자존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존적으로 행동하는 연습을 하지 못한다. 보통 어른들이 내리는 결정을 얼떨결에 따라가다 조금 더 클 때쯤이면 ‘취향’이라는 게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할 때쯤엔 지금 내 모습과 내가 원했던 모습 사이의 괴리감을 느낀다. 어딘가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줄기를 잘라낸 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다시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온다. 마치 거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어 끊어진 생명의 끈을 다시금 이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뿌리에서 움튼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생명에 불과할 뿐, 결코 다시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는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하며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한스가 학교의 규율과 압박에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행복하는 법도 잊은 사람이 되어 결국 파멸하고 만다. 그가 공부를 싫어한 게 아니다. 그가 싫어했던 것은 공부를 잘해야만 행복하다는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는 학교였다. 하지만 자기가 느낀 세상은 아니었다. 그는 한가로이 낚시하는 것이 행복했다. 시내를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느끼는 세상의 행복은 공부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부의 이유가 없어졌다. 가장 쓸데없는 공부는 “뜻이 없는 공부”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자라면서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 온전한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양하며 그 다양성을 승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고귀한 일 중 하나다. 우리를 이끌어주는 어른들, 특히 교육자는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역할은 줄기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뻗어나갈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가 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생각해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는 자연스레 웅장하게 자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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