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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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대화
어둠 속의 대화는 작가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전시회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체험 전시’이다. 전시 소개에 “어둠 속에 꾸며진 7개의 테마를 로드마스터와 함께 100분간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체험하는 참여형 체험 전시”라고 되어 있어서 난 이것이 학창 시절에 해보았던 시각 장애인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시간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체험해보고, 또 우리 사회에 많은 요소요소에 그들을 배려해주는 시설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전시라고 생각하고, 전시회에서 나눠 준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들고 큰 기대 없이 전시에 참여했다.
함께 입장한 조원들과 함께 로드마스터라고 불리는 안내자를 어둠 속에서 만났다. 내심 비상구를 가리키는 불이라도 있을 것을 기대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이런 곳에서 100분을 어떻게 버티지?”라는 걱정이 생기던 중 안내자가 나에게 긴장을 풀고 눈을 감으라고 하며 능숙하게 내가 잡고 있어야 하는 줄을 알려줬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 남은 시간 동안 전시회에 꾸며져 있는 숲속, 바다, 시장, 카페 등등의 테마 체험을 이어나갔다.
전시 중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시간이 있었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총동원해서 나는 콜라와 사이다를 구분해보려고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안내자는 나에게 정답을 알려주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구분을 못 한다고 이야기를 해줬지만, 평소에 누군가가 콜라와 사이다 중 무엇이 더 좋냐고 물어봤을 때 콜라가 더 맛있어서 좋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맛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콜라가 좋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을 보면, 음식의 맛을 느낄 때조차도 다른 감각들보다는 시각에 의존해서 판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그동안 시각에 의존하며 다른 감각들의 능력을 낮게 평가해왔다는 것을 느꼈다. 전시 초반에 어둠에 적응이 되지 않았을 때 안내자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끼며 안심했었고 안내자가 감상을 유도하고, 또 무리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통해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안내자가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가 끝나 갈 때 안내자는 자신이 시각 장애인임을 밝혔다. 안내자는 사람들의 소리, 냄새, 떨림, 갈 곳 잃은 지팡이의 소리 등으로 어떤 사람의 위치와 불안은 물론이고 눈을 뜨고 있다는 것도 판단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안내자의 모든 판단과 행동 들이 “다른 감각들로는 불가능하고 실제로 봐야만 가능하다.”라는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체험 전시에서 겪었던 몇 가지 순간들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감각들의 능력을 배제한 체 시각에만 의존해왔는지를 느끼기도 했지만, 전시 중 대부분의 시간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의 즐거움으로 채워졌다. 각 테마들에 있었던 사물들을 실제 봤다면, 그 사물의 모양만을 보고 어떤 특정 사물로 정의되고 끝났을 것도, 질감, 손으로 느껴지는 모양, 소리, 냄새 등을 묘사해보면 단순한 사물조차도 매우 흥미로운 물건이 되었다. 시각이 차단되고 그동안 잘 안 쓰던 감각들이 함께 사용되면서 감상의 폭이 넓어졌고, 사물을 느끼는 행위조차도 흥미롭고 즐겁게 다가왔다.
이 체험 전시를 통해 “내 오감이 모두 깨어났다”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몰랐던, 다른 감각들을 함께 사용하며 감상할 때의 즐거움과 풍부함을 알게 되었고 또 점점 단편적이고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매체들에만 노출되고 있는 나에게,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터득시켜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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