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채식주의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818회 작성일 18-11-01 23:21

본문

채식주의자

한강




   항상 월말이 다가오면, 주변의 책장을 한번씩 둘러보곤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고개를 돌리다 보면, 가끔은 꽤나 만족스러운 표지의 책을 찾을 수 있는데, 이번에 무심코 손에 들린 '채식주의자'라는 책은, 표지에 걸쳐져 있는 작가의 뭔가 씁쓸하기도 하면서 넋이 좀 나가보이는 표정 때문이었을까.. 들자마자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 불편함은 조금씩 강도를 더해갔고, 결국에는 책을 몰입해서 읽다가도 몇 번 이나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을 정도로 커졌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햇을까. 작가는 이 읽기 힘든 내용의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영혜'는 특별한 점이라고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가정주부다. 단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평소에 브래지어를 잘 차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그것 말고는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남편의 밥을 차지고, 요리도 곧잘 하며, 별다른 취미 생활 없는 30대의 평범한 부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혜는 돌연 채식주의자가 된다. 집안의 고기를 모두 가져다 버리고, 냄새조차 엮겨워 한다. 남편은 그런 영혜에게 영문을 묻지만, 영혜는 단지 "꿈을 꿨어"라고 대답한다. 그날 이후 영혜는 전차 야위어 간다. 몇 번이나 고기를 먹이려 노력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건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발생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그 잘에서 군인이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자 불같이 화를 내고 뺨을 때린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는 딸의 두 팔을 붙잡으라고 시킨 뒤 고기가 올려진 숟가락을 영혜의 억지로 벌려진 입에 우겨 넣는다. 영혜는 즉시 고기를 뱉고 칼을 찾아낸 후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멀쩡해 보이던 영혜가 이렇게 극단적인 채식주의자 혹은 정신이상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그녀를 대해왔던 사람들 - 사실은 주변 남자들의 행동들이 단서를 제공한다. 영혜가 매일 밤 반복적으로 끔찍한 꿈을 꾸기 시작한 전날 아침,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아직도 밥이 되지 않았냐며 고함을 치며 재촉한다. 그런 고함 속에서 그녀는 숨쉬기 힘든 압박감을 느끼고 고기를 썰고 있던 손을 점차 빨라진다. 어느 순간, 고기를 썰던 칼의 이가 빠지며 손에 피가 흐른다. 겨우겨우 고깃국을 완성해서 남편에게 아침상을 차려주지만, 나간 칼의 이를 씹은 남편의 고함소리가 다시 한번 귀를 때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쉽게 손찌검을 하는 사람이었다. 억지로 그녀의 입에 고기를 집어넣는 장면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자기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동네를 몇 바퀴 돈 뒤, 죽인 개를 잡아먹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아마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그녀의 무의식이, 이렇게 된 개와 자신을 동일 시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무기력한, 단지 주어진 것만 하고 살아야 한다고 쇄뇌되어 버린, 그러다 결국 한 번 내 의지대로 누군가르 물게되면,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그런 인생에 대한 분노라기 보다는 포기에 가까운 감정. 그녀는 아버지가 그렇게 잡고 요리한 개고기를 먹었다. 자신을 문 개에 분노하면서. 하지만 지금 개와 같은 처지가 된 그녀를 무의식이 자각했을 때,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역겨움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반복적인 학대와 억누름, 짓눌러짐은 사람을 단지 포기상태에 이르게 한다. 처음엔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저항해 보기도 하지만,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좌절스러운 결과는 결국 현실에 대한 채념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들, 억눌림들이 포기 상태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채식주의자' 챕터가 정말 불편했던 이유는, 나도 어딘가, 포기하고 체념한채로 묻어두고 있는 것들이 영혜가 트리거가 되어 솟구치려 하고 있어서 였던 것 같다. 나이가 먹을수록 담아두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감내해야 될 것들이 많아지지만, 쉽게 풀어낼 수 없는 것들이 마음속에 쌓이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챕터인 '몽고반점'은 한 가정의 가장인 한 비디오 예술가가 등장한다. 그 예술가는 어느 날 부인에게 자신의 동생이 아직도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순간 그는, 처제의 몽고반점을 중심으로 피어나느 온 몸을 덮고 잇는 꽃을 상상하고, 그 꽃과 또 다른 꽃이 그려져 있는 자기 자신의 몸과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흥분한다. 그 상상 속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안된 그의 처제에게 부인 몰래 몸에 꽃 페인팅을 하고 촬영을 해도 되냐고 묻는다. 불편하게도, 여기서 나오는 그의 처제는 앞의 챕터에서 등장한 그 영혜이다. 영혜는 몸에 꽃을 그리는 것과 꽃이 그려진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찍겠다는 요청을 쉽게 받아들인다. '자기가 꽃이 되는 것이 좋아서'가 그 이유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몸에 꽃 페인팅을 하면 처제와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 처제와 성행위를 한다. 다음날 아침, 동생이 걱정되 동생의 집에 찾아온 그의 부인은, 침대위에 있는 배나온 알몸의 꽃 무늬 페인팅을 한 한 남자와 똑같이 꽃무늬 페인팅을 하고 알몸으로 서 있는 그녀의 동생을 발견한다.

   첫 챕터와는 달리 두번째 챕터에서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 예술가의 -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 '광기' 이다. 예술인지 성욕인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러한 종류의 것은, 처음에 발을 떼게 되면 반복될수록 죄으식은 약해지고 점차 수월해지는 법이다. 술은 처음이 힘들고, 스킨쉽도 처음이 어렵듯이, '광기', 특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의 '광기'에 휩쓸리게 되면 각종 그럴듯한 당위성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며 옳던 그르던 한 발 한 발 자신의 생각에 휩쓸리게 된다. 읽다가 정말 소름이 돋았던 것은, 남자의 부적절한 행동의 과감성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 남자의 마음과 넋이 나가버린 것 같은 처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성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분별없는 광기와 기준없는 허용에 이미 나도 물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결국 광기에 휩쓸려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그와, 사람으로써의 삶에 초점을 잃어버린 처제, 그리고 삶을 끝까지 지탱해 보려 했지만 주변의 것들이 모두 무너진 그의 부인 세 사람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챕터인 나무 불꽃은 결국 정신병원에 다시 들어간 영혜에게 병문안을 가는 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신병원에서 영혜는 잣니이 '나무'라며 계속 물구나무를 서 있으려고 한다. 이제 먹을 것은 전혀 입대 대지 않고 '물을 맞아야 되'라며 자신이 정말 나무인 양 행동하는 영혜에게, 언니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에서 나는 이 상황들을 고칠 수 있었을까'라는 의미없는 생각속에서 언니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결국 죽어가는 영혜를 바라 볼 뿐이다.

   책을 덮고, 나는 철저한 불편함에 휩싸였다. 가해자가 대부분 남자라는 조금 이상한 요사이의 한국 페미니즘 소설적인 성향이 초반에 다소의 불편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주된 불편함의 원인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막장과 불행의 끝을 달리는 내용들이, 사실은 우리가 조금만 이성의 끈을 놓아도 충분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이라는 것이 불편했고,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정말 많다는 사실이 다시 직시되면서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속이 쓰렸다. 하지만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눈을 찌뿌리면서 읽어내려가면서 미쳤다고 욕을 하면서도,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고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자각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비도덕적인 행위는 미워하고 그에 감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게되어 버린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사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도대체 누가 정죄할 수 있을까? 음행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자신있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