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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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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034회 작성일 18-11-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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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이남훈 저

   
   가끔 친구나 후배가 취업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취업 준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다가 흔히 말하는 공대생으로서 살아왔기에, 내가 누군가의 글을 봐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부탁은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라 그러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요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읽어볼 기회가 종종 있다.
 
  비 오는 날 2층 카페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면, 온통 유행을 따라 비슷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남들의 눈에 튀고 싶지 않아서 전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다닌다. 그들에게선 아무런 개성을 찾아볼 수 없다. 나에게 자기소개서를 보내준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 딱 그런 생각이 든다. ‘도전적인’, ‘창의적인’ 등의 표현으로 자신을 애써 포장하지만 그들의 글에서는 아무런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사용하는 식상한 문장과 정형화된 패턴으로 가득하다.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들의 글에는 아무런 감동이 없다. 내가 회사의 인사담당자라면 뽑고 싶지 않았을 자기소개서였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모두 구매할 여건은 되지 않아 학교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이다. 책이 가득한 도서관은 그 공기가 무거워 발걸음조차 떼기 어렵다. 무거운 공기와 책 무더기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눈에 밟히는 책을 고르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던 마음이 누그러들고 기분이 좋아지기에,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나의 사소한 취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 취미를 즐기는 이유는 그곳이 조용하기 때문이었다. 최근 리모델링 후에 카이스트 도서관 내부가 굉장히 쾌적해졌음에도 도서관에서 책장 사이를 거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은 열람실 책상에 앉아 전공 서적을 보거나 수업 프린트물을 본다. 책을 읽으라고 만들어놓은 도서관은 어느새 학점과 취업을 위한 독서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미래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20, 30대의 10명 중 1명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의 이순영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독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 책 읽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는 것은 더욱 심각한 일이다. 그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더욱 유용하다고 믿고 있었다. 굳이 어려운 글들을 왜 시간과 체력을 쓰면서 읽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렇다. 책 읽기를 취미로 가진 학생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과거에 책을 들었던 손에는 어느새 스마트폰이 있다. 쉽고 자극적인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그런 것들에만 흥미를 느낀다. 올해 한 앱 분석 업체에 따르면 1인당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이 한 달에 1077분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한 달에 약 18시간을 시청한 셈이다. 전 연령을 통틀어 낸 통계이니 스마트폰을 주로 사용하는 10, 20대는 유튜브에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성공한 원인도 짧은 글과 자극적인 것들을 선호하는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짧게 요약된 기사들만 읽거나 이조차도 귀찮아서 보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된 뉴스 카드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카이스트 기숙사의 로비에 매일 비치되던 종이 신문도 이제 읽는 학생이 없어 내년 1월부터 구독을 중단한다고 한다. 애석한 일이다. 쉽게 소비하고 소화할 수 있는 것들만 섭취하고 그러한 것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큰 덩어리를 먹고 소화하기가 이제는 매우 버거운 것이다. 그래서 굳이 글을 찾아서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글을 읽고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있으며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이기에 일반화하긴 다소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 자기소개서의 첨삭을 부탁하는 친구가 많았고, 그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 들러 글쓰기에 관한 책을 하나 골랐다. 무려 18년의 글쓰기 내공을 가지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남훈은 그가 지금까지 몸소 겪었던 글쓰기 노하우들을 그의 저서 <필력>에 풀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하기 전에 독자에게 하나의 전제를 던졌다.
 
  그러니 우선은 생각의 그릇을 넓힐 일이다. 생각의 그릇대로 글의 그릇도 결정된다. 이 책은 생각의 그릇만큼 글의 그릇을 빚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생각의 그릇 크기에 상관없이 재주만 키워주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필력> 中
 
  그는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생각의 크기부터 키워야 한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는 여러 책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러한 노하우보다 먼저 자신의 사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비단 글쓰기뿐이겠는가.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과 글은 곧 한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고 사람은 그것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표현하지 못하는 대선 후보자, 경영 비전을 정제된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영자, 전략 방향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는 중간 관리자, 아는 것을 말과 글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교육자를 우리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라’라고 말하면서 한 사람이 평가받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의 크기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라는 초식이 가능하려면 ‘독서-생각-해석-기획-집필’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종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결과로서 드러나는 글은 이 과정을 숨기고 있는 빙산의 조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과정이 한 사람의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훈련이라는 사실이다. 독서는 지혜와 통찰의 정수를 빠른 시간에 흡수해 창의력을 갖추도록 해주고, 생각을 밀고 나가는 힘은 집요한 사고력과 올바른 판단력으로 이어진다. <필력> 中
 
  한 사람의 생각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도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시간을 내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사고를 확장시키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매번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 생업을 포기해가며 여행을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한 의미에서 치열한 고민과 경험의 열매인 글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 소중하다. 최근 유명한 평론가도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아는 것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사고의 크기를 확장시키는데 중요한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의 크기가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글쓰기는 지적 성장과 인간관계의 밀도를 결정하고 사회적 성공의 조건인 입학, 취업, 승진과 궤를 같이하며 나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내공 중의 내공’이다. 글쓰기 내공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생존이 위협받을 리는 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에 담긴 수많은 고뇌와 선택의 과정은 나의 가치를 한 단계, 어쩌면 본인도 알지 못했던 높은 단계로 끌고 갈 수도 있다. <필력> 中
 
  글과 책이 홀대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멀리할수록 사고의 그릇이 작아질 것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사회는 자신의 의견을 탁월하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목할 것이다. 글쓰기는 학생 때부터 회사의 중역을 맡을 때까지 논술, 자기소개서, 보고서와 기획안같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면의 가치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가치를 높은 곳으로 올리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자기 생각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고 그렇게 표현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우물 안에 갇혀 떨어지는 비만 기다리는 개구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야를 가질 것인가. 그것은 오롯이 자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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