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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노 - 구니키다 돗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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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6,006회 작성일 18-11-0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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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새벽, 하늘은 맑고 바람은 깨끗하고 공기는 차다. 자전거 안장 위에 조그마한 웅덩이를 만든 이슬을 맨손으로 대충 닦고 자전거를 탄다. 처음에는 젖은 손이 조금 시리지만 자전거 바람에 금새 물이 말라 곧 괜찮아진다.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느리고 여유가 있다. 샛노란 은행나무들과 짙은 붉은 색을 내는 단풍나무에서 단풍잎이 천천히 땅에 내려 앉는다. 보도블럭 공사를 하기위해 인부들이 옮겨놓은 벽돌들이 말없이 길바닥에 앉아 바람에 비처럼 내리는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다. 보도블럭을 깔기 위해 맨살을 드러낸 이 길은 내가 학교에 처음오고 6년간 밟아오던 길인데... 낙엽지는 나무들을 보며 가을 감성이 들었는지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돌길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평범한 벽돌이라도 내가 그 길을 걸으면서 보냈던 시간과 추억들이 그 벽돌 안에 담겨있어서일까? 여느때와 같은 출근길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추억들을 되새이고 있다.

'무사시노'의 저자 구니키다 돗포는 자신의 책을 통해 무사시노 지역에서 머물렀던 1년의 기억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일반적인 책이라면 인트로에서나 아주 짧게 다룰만한 지형과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무사시노'는 무려 9개의 챕터를 통해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름의 녹음이 남아있는 무사시노의 초가을, 타오르는 불처럼 빛나는 가을 숲, 등불에 반짝이며 춤을 추는 흰눈, 아름다운 매화와 달, 그리고 봄의 벗꽃... 저자가 설명하는 무사시노는 감탄이 절로 나올법한 엄청난 전경이 있거나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있는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에게 무사시노는 자연과 사람이 가장 잘 어우러지고 곳이자 사계절이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장소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추억들이 곳곳에 묻어있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낙엽림의 정취를 느끼며 투르게네프의 '밀회'를 읽은 기억, 고가네이의 강둑을 함께 걸어갔던 친구와의 우정, 억새밭을 거닐며 사색에 잠겨있떤 시간, 이 모든 기억들이 저자에게 추억으로 남아 무사시노는 저자에게 더욱 가치있고 특별한 장소로 남을 수 있었다.

2012년 8월에 대전에 도착한 뒤 벌써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가족 없이 혼자 정착을 해야했던 대전에서의 첫 겨울은 니카라과에서 경험하지 못한 몸과 마음의 추위를 주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대전은 봄이든 겨울이든 너무도 따뜻하고 정겨운 도시가 되어버렸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신 부모님 아래에서 나는 한 도시에 3년 이상 정착을 한 적이 없었기에 대전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진심으로 정착한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것일까? 6년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것 같았던 장소들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무언가 마음 속에서 아려오는 듯한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시험을 준비했던 도서관도 지금은 리모델링이 되어서 변해버렸고,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서 동아리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무 벤치들이 있던 공간도 지금은 새로 지어진 장연신 학생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늘 쌀쌀맞은듯 보여도 정이 많으셨던 '닭 한마리 칼국수' 사장 할머님... 미국에 계신 따님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장사를 접고 미국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아쉬웠는지... 아직도 그 집의 닭 칼국수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시드니 셸던의 소설 'Nothing Last Forever'의 제목처럼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젊고 건강한 육체도, 거대한 건물도, 위대했던 제국도 결국 시간 앞에 무릎을 꿇고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영원할 것 같던 여름의 더위도 계절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지 않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변해버릴 지언정 끝까지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좋아하는 장소에서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은 추억이 되어 죽음이 다가오는 그날까지 변하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 또 그 추억을 함께 보낸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남는다. 영원하지 않는 것들이 가치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돈과 외모, 젊음과 건강, 명예와 성공 모두 우리에게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남겨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없어지는 것들을 위해 영원한 것들을 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바보다. 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보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영원한 가치를 찾아 살아간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 짐 엘리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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