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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스무 살이 다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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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환
댓글 0건 조회 6,355회 작성일 18-11-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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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스무 살이 다시 온다면 > - 이남미

 

- 이 승 환 -

 

 

   “내 몸과 마음은 항상 2012년 21살이야!”

   2010년 겨울 처음 본 수능에서 만족할만한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재수를 결심하였지만, 재수로 보낸 일 년이 무색할 만큼 2011년 겨울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세 번째 도전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2012년 봄에 아주대학교에 입학했고, 나의 이십 대는 정해진 나이보다 일 년 늦은 스물한 살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아직 젊다는 것을 어필할 때면 항상 2012년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스무 살이 다시 온다면 무엇을 할까? 누군가는 못다 한 배낭여행을 떠나겠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부족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한단다. <내게 스무 살이 다시 온다면>의 저자 이남미씨는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살았던 스무 살을 다시 한번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찬란하고 치열했던 이십 대였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남미씨가 그녀의 이십 대를 돌아보며 가족, 친구, 직업과 관련하여 인생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경험담을 듣다 보니 나도 내 지난날이 떠오른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맛’에 비유할 수 있는데, 정해진 시간표마다 움직이다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던 스물한 살이었던 2012년을 다시 떠올리면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음모론이 돌면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매일매일 런던올림픽을 보며 밤을 새우느라 시기를 놓쳐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고, 18대 대선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2012년이었다. 나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한번 2012년을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

 

 

잘못된 습관 고치기

 

   만족스럽지 못한 재수 생활을 끝냈지만, 가슴 속에서는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한 허탈함만 남아있었다. 수능 성적표를 받고 아주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3개월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깊은 열등감에 빠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비관적으로 변했고, 끝내 “열심히 살아도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입학식에 ‘그냥’ 가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그냥’ 갔다. 사상이 비뚤어져 있어 그런지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고 여러 동아리의 홍보를 듣는 당시의 나는 무력한 마음에 ‘자발적 아싸(Out Sider)’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친구와 선배를 잘 만난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고 그러다가 말을 텄다. 한 동아리에 모여 같이 모여 밥을 먹고 같이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술소학회 Netronics에 몸을 담았지만, 그 동아리에서 졸업할 때까지 대학 생활을 보냈다.

   일전에 아주대학교에서 졸업작품 지도를 해주신 이종욱 교수님도 그랬다. 당신께서는 삼십 대가 되기 이전인 이십 대에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바로잡고 이념을 세워야 한다고 수업시간마다 열을 올리셨다. 다음 주면 그 동아리의 홈커밍데이가 있는데, 잘못된 생각을 자연스레 고쳐주고, 이십 대의 첫 단추를 잘 꿰매준 고마운 곳으로 간다. 마음의 고향으로 가는 기분인데, 보고 싶던 얼굴들을 마주할 것이다.

 

 

이별하는 법

 

   “형, 지금 어디야?”

   아버지와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런지 작은아버지가 또 나를 아버지인 줄 착각하신다. 새벽 두 시에 집으로 전화를 건 작은아버지의 목소리는 유독 다급했다. 그런데도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작은아버지 저 승환이에요. 아버지는 오늘 야근이세요. 요즘 잘 지내세요?”

   “빨리 어머니 바꿔봐. 빨리!”

   농담을 주고받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뒤에서야 다급하게 어머니를 깨웠다. 어머니는 새벽에 걸려온 작은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조금 길게 통화를 주고받았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잠자리로 가지 않고 어머니가 통화를 마치길 기다렸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다. 아버지는 일 끝내고 바로 오신다니까 나갈 준비 하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유독 조용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상복으로 갈아입을 때도 실감이 되지 않다가 할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보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삼일장을 치르며 밤을 새우면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승환(李昇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고, 글씨 쓰는 법, 한자, 서예, 장기 두는 법 등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하시면 늘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증조할아버지 얘기, 옛날이야기를 꺼내던 할아버지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연락이 뜸해졌고, 대학에 진학하며 여유가 생길 즈음에 돌아가셨다. 그동안 더 많이 뵙지 못하고 전화드리지 못한 게 죄송스럽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소중한 사람일수록 진심으로 신경 써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이제는 없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법을 배웠다.

 

 

스물두 살이 되면서

 

   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학년 2학기를 마무리하는 그 날은 ‘공업수학A’ 기말고사가 있던 날이다. 오전 11시에 1학년 마지막 시험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와 짐을 쌌다. 지금은 기숙사의 옥상 문이 잠겨있는데 당시에는 옥상 문이 늘 열려있었다. 그래서 이따금 옥상으로 올라가 멍하니 하늘을 보곤 했다. 그날도 역시 기숙사를 떠나기 전에 평소 하던대로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보고 싶었다. 1학년의 마지막 날에는 예정에 없던 함박눈이 내렸고, 내리는 눈과 일 년을 정리하며 내뱉는 한숨이 뒤섞인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스물두 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렇게 스물한 살을 마쳤고, 스물두 살이 되는 해인 2013년에는 기말고사가 끝난 3주 뒤에 군으로 입대했다. 6년이 지난 지금 2012년으로 돌아가 스물한 살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2012년의 소중한 경험과 당시에 배운 것을 떠올리면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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