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건축 - 구마 겐고
페이지 정보

본문
작은 건축
구마 겐고 지음
“건축사를 움직여온 것은 획기적인 발명이나 기술의 진보 등 행복한 사건이 아니었다.”
인용한 문장은 책의 머리말에 있는 내용이다. 일본인인 저자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건축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건축계의 발전이 흔히들 생각하는 과학이나 기술의 발달도 천재의 개인적 재능, 발명, 창의가 아닌 거대한 자연 재해를 만나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발전해서 현대의 건축은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고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강하고 합리적이고 큰 건축’을 콘크리트나 철골을 이용해 만드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 요즘 건축을 아무리 ‘강하고 합리적이고 큰’ 것으로 만들어도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 또는 분노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할 뿐이라는 것이 여러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할 것만 같았던 건물들이 쓰나미나 허리케인 등으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도 무너져 내리는 일들 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작은 건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가 말하는 ‘작은 건축’이란 자립하고 자활하며 신이 부여한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물이 직접 자신의 둥지를 만들 때 그곳에 전기, 가스, 수도 등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듯이 건축물 그 스스로가 자립할 수 있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작은 건축’이다. 저자는 현대의 ‘강하고 합리적이고 큰’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프라가 정비되고 중첩되어 네트워크를 이루고 결국은 전 국토를 뒤덮었지만, 그런 인공적인 네트워크는 자연의 분노 앞에 나약하기만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인프라라는 건축물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연을 상대하고 자연 에너지에 의존하는 자립적인 ‘작은 건축’ 쪽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가 주목하는 ‘작은 건축’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라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를 세상이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에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과학기술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큰 시스템’이라는 답을 내렸고,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점점 ‘강하고 합리적인 큰 것’에 의존하려고 했다. 그렇게 초고층 건축과 거대한 상자 같은 건축으로 대표되는 ‘큰 건축’을 매개로 삼아 작은 인간과 거대한 세상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큰 시스템’ ‘큰 건축’은 인간을 세상과 연결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분할하고 절단해 인간을 그 시스템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에 대한 대가를 우리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빈부격차 등으로 치루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작은 건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작은 건축’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이는 책의 목차에서 잘 알 수 있는데, 쌓기, 의존하기, 엮기, 부풀리기의 4가지 방식이 그것이다. 언뜻 보면 목차에 제시된 단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과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건축들은 크고 웅장하며 위압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쌓는 것, 기대어 놓는 것, 엮는 것, 부풀리는 것의 간단한 것들로는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작은 건축’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지금의 우리가 큰 시스템을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던 수동적인 존재였다면, ‘작은 건축’이 추구하는 이상은 직접 둥지를 짓고 에너지를 얻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작은 건축’이 우리에게 가깝고 손대기 쉬운 편안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그 고뇌의 결과가 앞서 이야기한 4가지의 접근 방식이다.
잠시 컴퓨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196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메인프레임이라는 고가의 대형 컴퓨터를 여러 명이 공유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 값싼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다. 1970년 ‘퍼스널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케이는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 설립에 참가해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인 ‘다이나북’ 개발에 종사했다. 팰로앨토연구소를 견학하고 앨런 케이 등의 활동을 통해 힌트를 얻은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차고에서 애플 1을 제조한 뒤, 이듬해부터 판매하기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컴퓨터를 ‘큰 기계’에서 ‘작은 기계’로 완전히 전환한 것이다. 이렇듯 컴퓨터 세계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작은 컴퓨터’가 거대한 시스템을 대신했다. 어찌보면, 지금 세계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작은 건축’도 결국은 건축이나 도시 계획 역시 이 흐름에 맞춰 가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전글가마쿠라 부인 - 구니키다 돗포 18.10.09
- 다음글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 오구니 시로 18.10.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