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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 허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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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환
댓글 0건 조회 5,770회 작성일 18-10-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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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한국인 > - 허태균

 

- 이 승 환 -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것 같아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참 모순적이고 역설적인데 보통 친구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제가 선택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제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에요. 날 때부터 우리 아버지 어머니였고, 그건 어떻게 해서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친구는 제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그 선택을 취소할 수 있지만, 부모님은 제가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 선택을 취소할 수가 없어요. 친구랑 정말 크게 싸워서 돌아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의절하고 깨끗하게 잊을 수 있지만, 부모님 같은 경우는 ‘미워도 다시 한번’하면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볼 때, 모든 인간관계 중에 가장 특별한 관계는 ‘부모와 자식’인 것 같아요. 저는 어디에서 무얼 하든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니까요.”

 

   추석이 끝나갈 무렵 대전으로 돌아오기 전 가족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했던 말이다. 태어나길 원한 적이 없는데 지금의 부모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자라나길 원한 적이 없는데 지금의 부모님에게 의지하며 성장했다.

   ‘이분들은 어쩌다 나의 부모님이 되었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분들의 생각과 이분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을까?’ 하는 다소 뜬금없는 의문은 ‘나는 어쩌다가 한국인이 되었을까? 어쩌다가 한국인 같은 생각과 한국인 같은 행동을 할까?’ 같은 더 뜬금없는 의문으로 확장된다. 그러다가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잘 접하지 않았던 사회심리학에 관련된 책인 것을 알았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이라 다시 책장 속에 넣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포함에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한국인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어 계속 읽기로 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는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며 한국사회를 심리학적인 틀에 맞추어 분석하고 재해석하려 한다. 한국사회는 크게 여섯 가지의 특성이 있으며, 그 여섯 가지 특성은 주체성, 가족 확장성, 관계주의, 심정 중심주의, 복잡 유연성, 불확실성 회피가 바로 그 특성이다.

   그 특성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고 타인이나 사회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주체성, 자신이 속한 조직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가족 확장성, 집단과 조직 속에서 공식적인 역할보다는 자기 옆자리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관계주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는 그 행동 너머에 있는 숨겨진 심정을 중요시하는 심정 중심주의,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선택을 피하고 포기를 싫어하게 만드는 복잡 유연성,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꺼리는 불확실성 회피 등이 있다. 이 여섯 가지 특성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한국사회를 한국 사회답게 만든다고 한다.

 

   여섯 가지 특성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행동보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느끼고 싶어 하는 ‘심정 중심주의’ 부분에서 발목이 잡혔다. 깔끔하게 의사를 표현하면 되는 상황인데, 행동의 바탕에 어떤 의도가 깔려있는지 생각해봐야 하고, 보이는 행동과는 다른 진의가 있는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배려’라고 부르고 있고, 이런 상황을 반복하면서 ‘눈치’를 익혔다. 우리는 이렇게 ‘체면’을 차리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진심을 느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 자신도 매일매일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

 

   “승환아, 오늘은 형이 살 테니까 형이랑 진솔한 얘기를 하면서 같이 해가 뜨는 걸 보자.”

 

   아,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평소 절친한 이 형은 아주대학교 사람인데, 이 형에게 연락이 오면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자리에 나가 이 형과 마주 앉으면 시시콜콜한 일상얘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선수, 요즘 새로 시작한 취미 등에 대한 일장연설을 시작하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공백이 생겨 정적이 흐르면 그 어색한 공백은 술로 채워지며 화제가 바뀐다.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적잖이 술이 들어가 이분께서 취하시면, 그제야 오늘 내가 이 자리로 나온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형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학을 하게 되어 학년이 늦었다. 군(軍)에서 전역한 뒤에 집안일을 돕느라 복학하는 시기를 늦추게 되었고 당시에는 이 형이 전공과목을 처음 접하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두뇌를 쓰지 않아 머리가 굳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나이가 한참 어려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고 한다. 복학하는 시기가 늦어져 동기들은 이미 졸업을 바라보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고 한다. 전자공학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서로 무리를 지어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데 자기는 혼자 학교에 다니다 보니 그런 면에서 아주 힘들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하소연을 한다. 그러다가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며 자리를 파하고 귀가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이 형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 자리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바로 잠들지 못한다. 하소연하는 이 형의 이야기가 자꾸 귀에 걸려 나도 모르게 컴퓨터를 켜고 이분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을 묶어서 메일로 보낸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는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진심 어린 연락이 와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의도를 전달하지 않아도 나는 이 사람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이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매번 직접적인 부탁 없이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이에 부응하여 도와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으며,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이 형과 친해질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뜬금없이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손을 내밀었을까? 아마 그 사람을 경계하느라 신경부터 곤두세울 것 같다. 도와주는 것을 주저할 것이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업무상 만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명함만 주고받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진심이 통하지 않던 상대가 자신을 내려놓고 속마음을 보여준다면 그 모습이 딱하여 기꺼이 손을 뻗어줄 것 같다.

   행동보다는 마음으로 진심을 느끼고 싶어 하는 ‘심정 중심주의’와 같은 행동 특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진심을 알아주길 원하기 때문에 분명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한 번 진심이 통하면 그 관계는 무엇보다 끈끈해지는 것 같다. 어쩌다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행동 양식, 가치관을 닮게 되었고, 더 크게 보면 어쩌다 한국인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인들과 어쩌다가 생긴 관계 중에 진심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덕에 수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다. 당장 오늘 새로 생길지도 모르는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를 기대하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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