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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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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920회 작성일 18-10-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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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깊어가는 가을이라는 계절적 구색, 더불어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길래 속는 셈치고 읽었더니 나름 선방했다. 나나 주변사람들이나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술자리도 자주 못하는 이 때, 간만에 시에 마음이 빠졌으니 이정도면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꼭 공부도 못했으면서 학창시절 ‘홀로서기’, ‘별헤는 밤’, ‘지란지교를 꿈꾸며’ 같은 시 몇 편 외우고 다니면서 얕은 자부심을 챙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온갖 유혹들과 함께하였고, 시를 접할 시간 따위는 더 이상 할애하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이 좋다면서 샀던 관련 책들은 한쪽 구석에 박혔고, 시 자체는 어느 순간 이후부터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학창시절의 감성이 살짝은 남아있었는지 책 속의 시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시들이 친숙하기도 했고, 영화나 사진 등의 예술작품이 함께 어우러진 조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예로 들면 이렇다. ‘부모’라는 곡을 소개하면서 김소월의 시 ‘부모’를 언급하고, 김소월의 어릴 적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 ‘어려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을 거친다. 이후 저자의 소회와 함께 신경림의 ‘아버지의 그늘’을 소개하고, 작품의 고찰을 가볍게 끝낸 뒤 다시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등장하여 작가의 회상으로 끝맺는다. 시를 교과서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독자와 공감하고 느낀다.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단지 시를 시답게 만날 방법을 제시한다.

 

       직접 강의를 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추억 속의 곡이 글로 소개되지 않고 BGM으로, 혹은 사진으로 소개된 영화가 스크린에 재생되고 시를 낭독하는, 눈으로만 느끼지 않는 그런 환경이었다면 더욱 감성적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주말에 가끔 세차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여기 사장님은 희한하게 시와 클래식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시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 (거부감이 없는 건지 그냥 주입이 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거부감이 없다는 것, 작가는 이 또한 시를 시답게 접하는 것이라 한다. 학창시절 단순히 성적을 위해서가 아닌, 이렇게 감상하면서 시를 즐기는 것을 경험했더라면 시에 대한 짙은 향수가 가끔은 시집에 손이 가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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