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지식을 이어왔는가
페이지 정보

본문
인류는 어떻게 지식을 이어왔는가
문자의 역사 (스티븐 로저 피셔)
인간이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한 개인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며 끊임없이 쌓아왔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명이 세워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고 사라졌다. 농부는 땅을 일구며 더 나은 농법을 찾아냈고, 의사는 병을 치료하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천문을 관찰하던 사람은 하늘의 움직임을 살폈으며, 정치인은 사회를 다스리는 방법을 고민했다. 한 사람의 삶은 언젠가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시행착오와 발견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남긴 것은 다음 사람에게 전해졌고, 그 위에 또 다른 사람의 경험이 더해졌다. 인간은 그렇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며 지금의 문명에 도달했다.
[문자의 역사]는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한 문자의 시작과 변화를 다룬다. 문자는 매듭과 눈금, 그림처럼 정보를 남기기 위한 단순한 기호에서 출발해 점차 인간의 말을 기록하는 체계로 발전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등장했고, 페니키아 문자에서 그리스와 라틴 알파벳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형성되었다. 동아시아에서도 한자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문자 문화가 발달했으며, 한글과 가나처럼 각 언어에 맞는 새로운 문자도 만들어졌다. 이후 필사본과 인쇄술을 거쳐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형태와 전달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수천 년에 걸쳐 문자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역할은 분명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얻은 것을 그 사람의 삶보다 오래 남기는 것이다.
문자가 없다고 해서 지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고 더 효율적이며 뛰어난 지식을 터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강하게 묶여 있었다. 구전과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 다음 사람에게 전할 수는 있어도, 그 연결이 끊어지면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 역시 함께 사라질 수 있었다. 문자는 지식과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분리했다. 농부가 죽어도 농법은 남을 수 있었고, 의사가 죽어도 치료의 기록은 다음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수백 년 전에 이루어진 천문 관측도 후대의 관측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선 사람이 도달한 자리에서 다음 사람이 출발하고, 잘못된 것은 고치며 부족한 것은 덧붙인 뒤 다시 다음 사람에게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의 과학과 의학, 기술 역시 이러한 축적 위에 서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하나의 지식 뒤에도 그것을 발견하고 검증하고 반박하며 수정했던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각자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앞선 사람이 도달한 곳을 다음 사람이 이어받는다. 인간의 발전은 거대한 이어달리기에 가깝고, 문자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었다.
[문자의 역사]에서 문자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그대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의 언어와 문화에 맞추어 변화해 왔다. 같은 계통에서 출발한 문자도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며 새로운 형태와 쓰임을 갖게 되었고, 기존 문자로 자신의 언어를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울 때에는 새로운 표기 방식이 만들어졌다. 문자의 모습에는 그것을 사용해 온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역시 이러한 문자의 성격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에서는 한자를 중심으로 문자 생활이 이루어졌지만, 중국어를 바탕으로 형성된 한자와 우리말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두와 향찰처럼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한자를 익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자신의 말을 글로 옮기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세종은 이러한 간극을 우리말의 소리와 구조에 맞는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좁히려 했다. 한글의 의미는 우리말을 보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자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다른 사람이 남긴 것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직접 기록할 가능성도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렸다. 문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일부에게만 허락되었던 기록의 영역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기록을 없앤다는 것은 이러한 연결을 끊는 일이 된다. 중국 진나라의 분서는 특정한 역사서와 사상적 전통의 유통을 통제하기 위해 기록을 없앴던 사례다. 책을 태우면 그 안에 담긴 정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경험한 것,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바라본 방식과 다음 사람에게 남기고자 했던 생각도 함께 전달될 길을 잃는다. 문자를 통해 자신의 생애보다 오래 남겨놓은 삶의 일부를 다시 그 시대 안에 가두는 셈이다. 한글의 창제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혔다면, 기록을 금지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후대까지 전달될 수 있는 삶의 범위를 좁힌다. 결국 문자는 단순히 정보를 담는 그릇이 아니었다. 누가 앞선 사람의 지식을 이어받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여 다음 시대에까지 남길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와 실제로 존재했던 과거는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같은 크기로 남은 것은 아니다. 기록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삶은 쉽게 사라졌고, 기록되었더라도 파괴된 것은 후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반대로 살아남은 기록은 그것을 남긴 사람의 생애를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수많은 삶 가운데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도달한 흔적을 통해 다시 구성된 과거이기도 하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가 모든 개인이 특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얻은 것을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두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며, 서로의 삶을 이어왔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긴 문장을 지금의 우리가 읽고, 그들이 남긴 지식과 시행착오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기록하는 것 역시 언젠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도달할 것이다.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같은 시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기록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일을 이어간다.
한 사람의 삶 위에 또 다른 사람의 삶이 쌓인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인간의 삶이 서로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져 온 흔적일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