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페이지 정보

본문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거나 대단한 위치에 올라간 사람들의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변 이웃이 들려주는 소박한 고백이 훨씬 가슴 깊이 와닿을 때가 있다. 나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이런 소소한 글들에 마음이 더 끌리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속도전에 강하다고들 말한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 속에서 빠르게 재건을 이루어 낸 저력은 분명 커다란 자산이었지만, 개인의 삶과 마음의 영역에까지 일방적인 빠름을 요구하면서부터 여러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조금이라도 글을 늦게 떼면 안절부절못하며 다그치는 부모들의 모습이나, 남들만큼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하면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 찍어 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의 솔직한 경험담을 통해 조용히 일깨워준다.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나에게 참 버겁고 어렵게 다가온다. 우리는 평소 생각이 깊거나 의젓한 아이를 마주할 때 어른스럽다는 말을 자주 건네곤 하는데, 과연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이십 대 후반이나 서른 남짓한 나이 역시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번듯한 어른으로 보이겠지만, 부모님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단순히 나이를 먹고 몸이 자랐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참된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핵심은 내면의 감정을 얼마나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느냐에 있는 것 같다. 기쁨과 슬픔, 분노를 있는 그대로 분출하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은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제동을 걸 줄 알아야 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모습이 때로는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넘쳐나는데, 이러한 타인 들과의 만남은 때로는 커다란 상처를 안겨 주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 사람들은 으레 상대방의 모난 성격이나 변해버린 태도만을 탓하기 쉽다. 하지만 그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나게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서로가 끊임없이 다듬어가며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항상 어렵고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만큼 고단한 과정을 거쳐 지켜낸 관계일수록 나중에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은 훨씬 더 깊어지는 법이다.
직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이 가진 직업의 화려한 겉모습이나 낭만만을 부러워할 뿐,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뒤에서 겪는 지독한 고충과 스트레스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결국 과거의 내가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남의 배경이나 가진 것들을 그저 부러워하며 서성이는 일은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미 지나가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자책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내가 충분히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내일의 삶을 바라보는 편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내 삶을 단단하게 가꾸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해온 저자가 10년, 20년 뒤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듯, 나 역시 내가 선택한 일에 만족하고 나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생각할 줄 아는 그 습관 이야말로 그를 결코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주어진 일만 처리하며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나 역시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기에 저자의 생각하는 습관은 참 배워볼 만하다고 느꼈다. 앞만 보고 무작정 내달리는 조급함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의 여백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야말로 험난한 세상을 가장 나 답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
- 이전글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26.09.19
- 다음글악마가 악마에게 26.09.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