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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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의 흔적
-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 전시를 관람하고 -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할 때, 우리는 개별 작품뿐 아니라 작품이 놓인 공간도 함께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주제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구성된 관람 동선과 작품의 배치, 조명과 설치물 등은 각각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개별 작품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어떠한 공간적 구성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전달되는 주제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공간 또한 또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얼마전, 故김창열 작가의 집을 개조하여 만든 전시 공간에서 열린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이라는 전시를 보고 왔다. 김창열 작가는 평생에 걸쳐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그려왔던 화가이다. 내가 처음 김창열 화가를 알게 된 것은 타계 후 그의 작품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기사를 보고난 후였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맑고 투명한 물방울들. 실제 물방울이 맺혀 있는 듯한 정교한 표현이 놀라워 인터넷으로 김창열 작가의 그림을 검색해 찾아보다가, 화가가 평생동안 물방울만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왔다는 내용을 접한 뒤, ‘거장이 되려면 하나의 대상을 이렇게 깊게 탐구해야 하는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저 정교한 표현에 감탄했을 뿐, 물방울이 담긴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을 통해, 물방울이라는 것이 단순한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까운 사람들을 잃었던 화가의 고통과 상처를 씻어내고 스스로를 치유하며 수행을 하게 하는 매개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무언가 흘러내리거나, 총알맞은 상처를 연상시키며 전쟁의 참혹함과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들이었다면, 물방울의 등장 부터는 맑고 투명한 형상을 통해 상처를 씻어내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의 전시에서 물방울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알게 된 것에 더해 인상 깊었던 것은 작품의 변화에 따라 전시공간의 분위기를 다르게 조성함으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공간적으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초기 작품들은 검은 벽면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지만, 물방울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전시 공간이 점차 밝아지며 작품을 바라보는 감정 역시 달라졌었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는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이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있었는데, 어두운 형상으로 표현되었던 고통과 상처들이 물방울로 이어지며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와 과정 자체가 작가에게 치유와 수행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다시금 느끼고 관람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지난해의 전시가 작품의 변화와 공간적 연출을 통해 김창열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는 경험이었다면, 이번에는 김창열 작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 왔던 집에서 다시 그의 물방울을 마주하게 되었다. 평창동의 높은 언덕에 자리한 그의 집은 주변의 초목과 어우러져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그가 남긴 작품과 일상의 흔적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에는 전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공간을 따라가며 작품에 담긴 작가의 삶과 철학을 이해했다면, 이번에는 작가가 실제로 살아온 공간 자체가 작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어 주었다. 지상 2층과 지하 2층으로 구성된 큰 저택에서, 작가의 작업실은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라고는 하지만, 꽤 가파른 경사에 지어진 집이기에 커다란 통창을 냈어도 북한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을 듯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작은 천창을 통해 빛만 스며들게 하는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바깥과는 잠시 단절된 채 정갈하게 정돈된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공간. 해당 공간을 보고나니 작년의 전시가 떠오르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작가에게 정말 수행의 과정이었구나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공간에 맞춘 전시여서일까? 이번 자택 전시공간에 전시된 그림들은 과거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초기 그림들 보다는, 한지 위에 물방울의 질감을 표현한 그림이거나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린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천자문은 작가가 처음 배운 글이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작가의 인생 후반에 이르러 물방울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는 수단을 넘어,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부 전시관람을 마치고 저택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작가가 오랜시간 생활했던 집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종이 위에 맺힌 물방울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겹쳐 보였다. 지금은 평온하게 느껴지는 이 공간과 물방울에도, 그 평온함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기억과 시간이 담겨있을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씻어 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방울을 그려야 했을까. 사후 자신의 작업공간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뜻을 남겼던 작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기를 바랐을까. 그가 평생에 걸쳐 그려온 물방울에는 한 개인의 상처와 기억뿐 아니라,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도 함께 담겨있을 것이다. 작가가 평생에 걸쳐 그려온 수많은 물방울이 그의 내면에 남아있던 상처를 씻어내는 것을 넘어, 같은 고통을 공유하거나,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감상을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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