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도 나는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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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마치 누군가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화자인 병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직접 이야기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는 분명한 사실처럼 말하던 내용이 조금 뒤에는 다시 의심스러워지고, 앞에서 했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가 어긋나기도 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계속 ‘지금 이 이야기는 정말 있었던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일기나 개인적인 기록을 읽을 때는 적어도 그 글을 쓴 사람에게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기억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경험했다고 믿는 일을 적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병수가 확신하는 기억조차 사실이 아닐 수 있고, 나 역시 그의 기억에 의존하며 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으면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을 읽을 때도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의 말이 맞는지, 병수의 기억 중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작품이 그 답을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기 때문에 찝찝함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화자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화자의 설명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해하고 인물을 판단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때 과거의 기억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그런 기억이 하나씩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가 애초에 정확하지 않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도 완전히 확실한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한 병수는 자신이 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글을 통해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글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록이 기억보다 더 확실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기록조차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기억을 바탕으로 쓴 기록이라면 그 글 또한 잘못된 내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 역시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목만 보면 살인이나 범죄가 이야기의 중심일 것 같지만, 실제로 읽고 나면 늙어 가는 것과 잊어 가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이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몸이 살아 있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기억을 거의 모두 잃은 뒤에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쉽게 답을 내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단순히 삶이 끝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사라진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라기보다 기억과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 끝까지 읽게 되지만, 마지막까지 모든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내가 기억하는 나와 실제의 내가 다르다면,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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