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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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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26-10-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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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 폴을 보면 요즘 말로 '퐁퐁'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정확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고 혼자 상처받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탓일까. 

 

폴은 서른아홉 살의 여성 실내 장식가다. 자기 일도 능숙하게 해내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소설이 나온 시대를 생각하면 이런 여성이 흔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폴이 왜 로제 같은 남자에게 매달릴까. 

로제는 자기 삶을 구속받기 싫다며 주말마다 다른 젊은 여자들과 시간을 보낸다. 

폴도 그 사실을 뻔히 알지만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한다. 

그저 로제가 돌아올 월요일을 기다리며 자신의 일정을 비워둘 뿐.

 

그 모습이 워낙 답답해서였을까. 

한참 어린 매력적인 남자 시몽이 폴에게 다가왔을 때, 로제는 연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내면의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가 잘 생겨서도, 나이가 어려서도 아니다.

시몽은 로제처럼 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냥 폴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달려든다. 그런 열정적인 시몽이 폴도 싫지만은 않다. 

로제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결핍을 그가 채워주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 보면 시몽이 연주회 표를 보내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폴은 그 간단한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 한다. 

어쩌면 폴은 그동안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따져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일까.

본인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만 생각하는 일방적인 관계였으니.

 

시몽을 받아들이고 나서 폴이 다시 웃기 시작했을 때는, 보란 듯이 로제를 버리고 이대로 시몽 옆에 정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 이런 소설을 읽으면 나중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폴의 태도가 묘하게 식어간다. 

시몽과 같이 걸으면서 남들 시선을 계속 의식하고, 열네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신경 쓴다. 

무엇보다 시몽이 일까지 뒷전으로 미루고 자기한테만 매달리는 걸 고마워하기보단 점점 버거워한다. 

시몽의 감정은 너무 크고 뜨거운데, 폴은 그 감정을 똑같이 받아쳐 줄 에너지가 이미 바닥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일 순위가 되어 매 순간 설레고 반응해 주는 일 자체가 폴에게는 벅찬 노동일 수도 있으니.

 

결국 폴은 시몽이 우는 걸 보면서도 끝내 이별을 고하고,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다. 

과연 이 선택은 폴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결국 행복했을까. 

소설 맨 마지막에 로제한테서 “미안해,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겠어” 하고 전화가 온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시몽이라는 사람이 한바탕 지나갔는데도, 폴은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로제를 기다리는 그 지긋지긋한 밤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또 연락을 기다리고 스케줄을 맞춰야 할 텐데. 

그래도 폴이 굳이 그 길을 택한 건, 적어도 로제가 자기를 어떻게 외롭게 할지는 이미 다 알고 있어서일까.

시몽 옆에서 언제 식을지 모를 불안함과 미안함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어디서 어떻게 다칠지 뻔히 아는 상처가 폴에게는 익숙했던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기분이 찝찝했다. 

시몽을 쳐내고 돌아선 폴이 참 한심해 보였지만, 다 알면서도 결국 익숙한 핑계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그 마지막 통화 장면은,

 문득 예전 기억을 떠올리게 해 가슴속에 유독 씁쓸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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