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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것보다 무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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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26-10-1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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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는 것보다 무거운 것 ”

- 마이클 바엘리 著 「다르게 뛰기 : 스포츠 심리학에서 찾은 혁신, 성과 그리고 팀웍」 을 읽고 -

 

“우승은 모든 것이 아니다. 유일한 것이다.”

                                                   - 빈스 롬바르디 (Vince Lombardi, 미국 프로미식축구 감독)

 

 지난 9월 아시안게임. 수년간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을 맺는 자리인 만큼, 종목의 인기와 성적을 떠나 국가대표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모두가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선수들은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언행과 태도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또 어떤 종목은 승리하고도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축구와 야구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은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주어지는 병역 혜택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과 전면 재검토에까지 이어졌다. 분명 이겼음에도 축하받지 못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음에도 명예롭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논란의 이면에는 변화하는 사회적 인식과 낡은 제도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결국 그들이 보여준 ‘태도’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승리라는 결과에 가려져 있던 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와, 그 무게를 짊어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에 대한 문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다.”

                                                                                - 피에르 드 쿠베르탱 (Pierre de Coubertin,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창설 및 제2대 위원장)

 

 현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말과 달리, 오늘날 스포츠에서 승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승자에게는 명예와 부가 주어지고 패자에게는 냉혹한 평가가 뒤따른다. 미식축구 감독 빈스 롬바르디가 승리를 ‘유일한 가치’라고 역설했던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얼마나 노력했는가 보다는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먼저 묻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승리 그 자체가 반드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아니다.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 올리버 칸은 자신의 저서에서 경주 선수 마이클 슈마허의 동기(motivation)을 이야기한다. 슈마허는 단순히 우승하기 위해 운전한 것이 아니었다. 매 경기, 매 순간 완벽한 주행을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취가 자연스레 우승이라는 결과로 뒤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승리는 하나의 목적이었을지언정 스스로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기는 아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이 탁월함을 추구하려는 열망, 다시 말해 그만의 ‘내적 동기’가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행복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 스포츠는 단순히 상대를 꺾는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갈고닦으며 탁월함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승리란 상대보다 앞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자신이 선택한 길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했으며 무엇을 지켜냈는지가 어쩌면 승리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당연히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고, 그만큼 뛰어난 실력으로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다만 국가대표라는 이름엔, 실력만으로는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명예와 기대감까지 짊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보이는 무책임한 언행과 불성실한 태도, 동료에 대한 존중의 결여는 그들이 과연 그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얻었음에도 정작 그 명예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지난 월드컵과 여러 평가전을 거치며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받은 비판 역시 단순히 경기에서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족한 경기력보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때때로 그들에게서 투지와 절실함,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선수의 진심을 몇 번의 경기와 언행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그 자리에 걸맞은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은 실력이나 성적과 별개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이루더라도 이를 대하는 태도가 가볍다면, 그 성취마저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다. 반대로 비록 패배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그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러한 관념은 비단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에만, 그리고 또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저마다 어떤 자리와 역할을 부여받고, 때로는 자신을 넘어 누군가와 무언가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한 채 한없이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자신만 괜찮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자기애,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태도, 무언가를 위해 처절하게 도전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믿는 안일함까지. 이들을 보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나 무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게으른 태도일 것이다.

 

 물론 누구나 항상 올바른 태도로 살아갈 수는 없다. 때로는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을 소홀히 하고, 스스로에게 부여된 책임보다 당장의 편안함을 우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는 자세만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실력은 노력으로 키울 수 있고 성과는 기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결국 스스로 선택하고 대표하며, 책임져야 할 것이니까.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인 ‘고시엔(甲子園)’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고시엔은 높은 경기 수준과 치열한 승부로도 유명하지만, 그 속에서 학생 선수들과 지도자, 응원하는 친구들이 하나의 팀으로 보여주는 열정과 낭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 일례로, 패배한 팀의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눈물을 훔치며 구장의 흙을 주워 담는 모습은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 전통의 시작점에는 1946년 어느 학교의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준결승에서 패배한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서로를 탓하며 다투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이 패배한 구장의 흙을 각자의 주머니에 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 흙을 돌려주자고 다짐하게 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올바르게 지는 법’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패배한 구장의 흙을 담아간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패배의 뼈아픈 흔적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서기 위한 다짐이자 자신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증표일 것이다. 패배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대신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아픔을 다음 도전을 위한 각오로 바꾸는 것. 어쩌면 그 흙 한 줌에는 승리의 기쁨보다 더욱 값진 가르침이 담겨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승리하고 또 패배한다. 그러나 언제나 이길 수는 없으며, 모든 노력이 반드시 바라던 결실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을 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노력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중요한 것은, 승패를 떠나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 또한 삶의 어느 자리에서 패배한 채 돌아서야 할 때도 있으리라. 그때는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변명하기보다, 묵묵히 그 자리의 흙 한 줌을 주머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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