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삼일포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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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눈이 되기까지 — ‘눈 내리는 삼일포’를 읽고
요즘은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창밖이 채 밝기도 전에,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일어나 하루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밤에 깊이 잠드는 것도 아니다. 얕은 잠의 가장자리에서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이 번갈아 뒤척인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듯하다.
바쁘기만 하다면 차라리 괜찮겠다. 문제는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물음들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하고 있는 일들을 나는 괜찮게 해내고 있는 걸까. 한 가지를 이토록 오래 붙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되풀이한다. 하필 날씨는 또 왜 이리 좋은지. 하늘이 높아질수록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도 따라 높아지는데, 해야 할 일들은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리송하고, 어딘가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이 가을을 지나고 있다.
그런 때에 이 책을 읽었다.
조선 후기 화가 현재 심사정이 그린 삼일포 그림이 있다. 쪽빛 호수 위로 흰 눈송이가 흩날리는 그림이다. 그런데 사실 그 눈은 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종이를 갉아 먹은 벌레의 흔적이라고 한다. 미술관은 그 구멍들을 감쪽같이 메우는 대신, 사람들이 오래도록 눈으로 사랑해 온 모습 그대로 남겨 두기로 했다. 상처가 풍경이 된 셈이다. 김연수는 이 그림에서 이야기 하나를 길어 올렸다. 딸을 살려 달라며 어의를 찾아온 한 사내, 덕암. 그는 좀이 슬어 구멍투성이가 된 그림을 내밀며, 이것은 망가진 그림이 아니라 눈 내리는 삼일포라고 말한다.
요즘의 나는 내 삶에 난 구멍들만 세고 있었던 것 같다. 놓친 것, 서툴렀던 것,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들. 잠 못 드는 밤마다 그 구멍들을 하나씩 손끝으로 짚어 보며, 이건 실패일까, 이건 낭비일까, 판정을 내리려 애썼다. 그런데 벌레가 종이를 파먹던 그 순간에, 그것이 훗날 눈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벌레는 그저 제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세월은 그저 흘렀을 뿐이다. 그것을 눈으로 본 것은 한참 뒤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림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네 자신이니까.
어쩌면 나는 그림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하루 안에, 끝나지 않는 물음 안에 갇혀서, 지금 이 장면이 전부인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지금 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바로 이 자리에서 판가름하려 했으니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구멍이 눈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림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부모님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어느새 주름이 깊어진 손, 조금씩 느려진 걸음. 주변 사람들의 소식도 예전과는 다른 결로 들려온다. 작가는 시간을 건너는 사람은 누군가와 헤어지고 무언가를 잃게 되어 있다고 썼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된다고. 쓸쓸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잃어버리는 일이 여행의 실패가 아니라 여행의 일부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도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뜰 것이고,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나를 붙잡을 것이며, 같은 질문은 또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물음에 서둘러 점수를 매기지 않으려 한다. 맞는지 틀린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그림이 다 마른 뒤에야 보이는 것일 테니까. 지금은 그저 내 몫의 붓질을 성실히 하면 된다. 떠나지 못한 이 좋은 날씨도, 뒤척이던 밤들도, 부모님을 떠올리며 괜히 먹먹해지던 순간도, 언젠가 돌아보면 어느 그림 위에 내려앉은 흰 점 하나쯤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 또 잠이 얕더라도, 그 구멍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눈이 내리고 있구나 하며, 조용히 한 번 웃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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