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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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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6-10-2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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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를 읽고


 이 책은 한 사람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소설이다. 그런데 여기엔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세속적인 기준으로 요약하면 오히려 실패에 가깝다. 그럼에도 묘한 여운이 남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누구에게나 자기 이야기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대학에서, 교양으로 들은 영문학 수업에서 뜻밖의 전환을 맞는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에 끌리는 사람인지 알게 되고, 결국 전공을 바꾼다. 그 선택 이후 그는 평생 그 대학을 떠나지 않고 영문학을 가르치며 살아간다.


그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충동적으로 시작한 결혼은 오랜 세월 불행했고, 학과 내 갈등으로 승진에서 밀려나 부당한 대우를 겪는다. 중년에 뒤늦게 찾아온 사랑도 지켜내지 못하고, 딸과의 관계마저 어긋난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마다 그는 무언가를 잃는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강의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문학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삶이지만, 그는 자기가 사랑한 일 안에서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다.


결국 이 소설은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 를 묻는 것 같다. 외부의 기준으로 채점한다면 스토너의 삶은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았고 그 일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태도의 일관성이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질문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연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성과 없이 보낸다. 몇 달에 걸쳐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을 반복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고, 그 수많은 시도 중 논문이라는 형태로 남는 것은 극히 일부다. 밖에서 보면 그 긴 시간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공백처럼 보인다. 스토너의 삶이 사건 없는 일생으로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공대 대학원생의 직업병인지, 연구자의 성취는 종종 숫자로 환산되곤 한다. 논문 및 특허의 건수, impact factor 등등... 그 기준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이 이 일에 쏟은 시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도 묻지 않을 질문을 붙들고 몇 년을 보내는 일, 실패한 실험에서 작은 단서 하나를 발견하고 혼자 납득하는 순간들은 어떤 지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대체로 그런 순간들이다. 결국 연구도 오래 머무르는 일이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것은 지금 다루는 문제가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이다.


물론 나는 스토너처럼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부당함 앞에서 지나치게 무력했던 장면들은 읽는 내내 답답했다. 이 소설이 체념하는 삶을 미화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세상이 매긴 점수와 내가 이 일에서 느끼는 의미가 꼭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차이를 견디는 힘이 결국 한 사람을 오래 일하게 만든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다. 화려한 성취를 남기는 삶도 좋은 삶이겠지만, 자기가 선택한 일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삶도 그에 못지않은 삶일 것이다. 스토너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았고 그것을 배신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그 시간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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