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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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물고기
우리가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의 예술을 감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안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유도 클 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이 지닌 가장 놀라운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이나 음악, 그림 등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다. 같은 생각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공감과 울림을 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듬어 타인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넘어 타인의 마음가짐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또한 그런 감탄을 느끼게 하는 예술가 중 한명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포인트들을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감정들을 섬세한 가사로 풀어내기도 하는 등, 음악적 취향과는 별개로 평범한 일상과 삶의 순간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건강하고 따듯하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인상적인 가수였다. 『물 만난 물고기』는 그런 이찬혁이 음악이 아닌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 소설이다. 평소 그의 가사에 담긴 시선과 표현 방식이 인상적이었던 만큼,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궁금해 고르게 되었다.
난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의 음악이. 단순히 노래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진정한 예술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한 음악가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선’이 생각하는 진짜 예술가는 단순히 음악을 잘하는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나아가 자신의 행위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선은 자신이 진짜 예술가가 되기 전까지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답을 찾아 헤매지만,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 흔들리던 무렵 선은 우연히 ‘해야’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해야를 통해 선은 그동안 고민해 왔던 예술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해야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가 원하던 예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해야와 함께한 시간은 길지 못했다. 해야와의 이별을 겪은 선은 그녀를 향한 그리움과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다.
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예술가들 역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알아가고, 이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이해해야 할 테니 말이다. 선이 그 여정에서 찾았다고 생각한 것은 해야라는 사람이었다. 해야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예술가로서 추구해야할 태도를 배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선이 자신만의 예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해야를 사랑하고, 이별을 겪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소설은 악동뮤지션의 앨범 『항해』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데, 선이 자신의 음악을 완성한 후, 해야를 떠올리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너를 사랑하는 거지’라는 익숙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여러 번 들어왔던 가사였지만, 선이 겪어온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고민의 과정을 따라온 뒤 마주한 가사는 이전과는 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까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경험과 감정이 쌓여 있을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책의 주인공이 선이와 해야였기에,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선의 모습에 집중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소설의 초반과 말미에 등장하는 ‘양’이었다. 양은 해야와의 이별 이후 슬픔에 빠져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간 선을 종종 찾아가 샌드위치를 건네며 식사를 챙겨주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다. 선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주거나 그의 고민을 대신 해결해 주는 역할이 아닌, 소설의 초반, 해야와 헤어지고 초췌한 선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잠시 등장했다가, 소설의 말미, 앨범이 완성된 후 ‘앨범이 완성되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또 잠시 등장하는 인물일 뿐이다. 이처럼 짧게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이름이 부여되고,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자리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양은 슬픔에 빠진 선이 자신의 내면에 갇혀 세상과 단절되지 않도록 꾸준히 문을 두드리던 존재로서, 우리 삶에서 주변 사람들이 지니는 의미를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다.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며, 많은 사람을 만나 서로의 가치관을 나누어 본다. 그 긴 여정 속에서 더없이 소중한 사람을 만나 열정을 불태우기도, 견디기 힘든 일을 마주쳐 잠시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내 삶의 방향을 바꿔준 특별한 만남이나, 결정적인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지만, 그 과정에서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그동안 너무 가볍게 여기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양’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 속 선이 예술가로서 자아를 깨닫고 성장하는 데에는 해야와의 관계를 통한 고찰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이 그 깨달음을 자신만의 예술로 완성하기까지의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데에는, 양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역시 작지 않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해야가 선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었다면, 양은 선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안 자신의 일상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켜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대단한 깨달음을 주지 않더라도, 그저 곁에서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또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함께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을 지탱해주는 주변인들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며 나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동안,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변을 잘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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